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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로에 선 ‘한반도 비핵화선언’

입력
2017.09.0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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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끝내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중대 보도 형식을 통해 발표한 공식성명에서 “조선노동당의 전략적 핵무력 건설 구상에 따라 우리의 핵 과학자들은 9월 3일 12시 우리나라 북부 핵시험장에서 대륙간탄도로켓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하였다”고 주장했다. 예상보다 빨랐을 뿐 북한의 핵실험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장소도 익히 알려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실험장이다.

기상청 국가지진화산종합상황실은 이날 오후 12시 29분께 풍계리 실험장에서 규모 5.7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9일 5차 핵실험의 지진 규모 5.0에 비해 폭발 위력이 매우 커진 셈이다. 추후 폭발력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되겠지만 지진 규모만으로 추정해 볼 때 이번 핵실험은 2006년 1차 핵실험 폭발력의 10배를 훨씬 넘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모두 6차례의 북한 핵실험 중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이후 김정은 집권 기간에 실시된 것만 네 차례(2013년 2월, 2016년 1월, 2016년 9월, 2017년 9월)다.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뉴욕채널을 통한 북미 간 비밀접촉은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김정은의 도발적인 강공책이다. ‘북한 김정은이 우리를 존경하기 시작했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일격을 당한 셈이다. 예측 불허의 트럼프가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안보는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북한도 아닌 듯하다.

북한은 이날 핵실험 바로 직전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로 장착할 높은 단계의 수소폭탄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의 핵과학자, 기술자들은 첫 수소탄 시험에서 얻은 귀중한 성과에 토대하여 핵 전투부로서의 수소탄의 기술적 성능을 최첨단 수준에서 보다 갱신했다”고 밝혔다. 이외에 북한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전자기펄스(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번 핵실험으로 집권 6년 차에 들어선 김정은의 북한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더욱 선명해졌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150여 차례의 고폭실험과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볼 때 핵무기의 다종화, 소형화, 경량화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남은 일은 핵무기를 중장거리 미사일에 성공적으로 탑재시키는 것이다. 최근 일본 상공을 지나간 미사일 발사 능력으로 보면 적어도 직선 사거리 기술은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핵미사일 전력을 체계적으로 운용하는 시스템인 지휘, 통제, 통신, 전산, 정보 체계(C4I)와 조기경보 체계, 발사대 보호 체계, 미사일 요격 체계 등을 갖추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고서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관련 당사국들로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기 전에 대담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의 핵무기 실전 배치는 시간 문제이다.

무엇보다 난감해진 측은 북한과 대화를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이다. 트럼프 정부 내에는 현재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고위급 전문가가 없는 상황이어서, 미국과 밀도 높은 전략적 의견을 교환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일본과의 긴밀한 대북 공조 역시 녹록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자칫 아베의 정치적 입지만 강화시켜줄 수 있다는 외교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 역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건으로 빙판에 내동댕이쳐진 지 오래다.

억견(臆見)은 힘이 세다. 여전히 정부는 1992년 1월 남북한 간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낡은 생각이다. 전술핵 도입,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는 비핵화공동선언이 존재하는 한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선언을 폐지하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할 때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부원장ㆍ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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