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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헌인마을 영화 같은 청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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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헌인마을 영화 같은 청부폭력

입력
2018.01.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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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상가에 불 지르고 개발반대 주민 고의 교통사고

교사범 수십억 철거용역 따내… 배후 의심 시행사 대표는 의혹 부인

‘철거관련 민원 해결 30억원’ 시공ㆍ시행사 수상한 합의서

주민들 “허탈…진실 규명해야”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시행사와 시공사들이 철거현장의 불법행위 등과 관련해 맺은 합의서.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시행사와 시공사들이 철거현장의 불법행위 등과 관련해 맺은 합의서.

‘철거 시행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말을 듣지 않으니 차량으로 겁을 좀 주어야 한다’

삼류 영화나 드라마 대본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뉴스테이 로비, 지분 쪼개기 수천억 대출 의혹(본보 2017년 12월 15일자 15면) 등으로 시끄러운 서울 서초구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과정에서 벌어진 ‘청부폭력’ 얘기다.

23일 한국일보가 법원 판결문을 통해 확인한 영화 같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06년 6월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철거용역업체 대표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B씨 등 3명에게 사업 예정지 내 특정 점포에 불을 지르면 ‘2억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B씨 등은 다음달 3일 오전 2시30분쯤 휘발성 물질을 이용, A씨가 지목한 점포 2곳에 불을 냈다. 범행 전 현장을 답사하고, ‘바닥이 타일로 돼있어 미리 휘발유나 신나 등을 준비해야 한다’는 등 치밀하게 모의했다.

A씨는 비슷한 시기 B씨 등에게 폭력도 교사했다. 지시를 받은 B씨는 같은 해 6월28일 오전 10시40분쯤 도시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대표 C씨의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수리비만 900만원이 넘을 정도로 충격이 컸고 C씨도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B씨는 자연스런 교통사고로 위장해 보험금 598만여원을 타내기도 했다.

연속된 의문의 화재와 교통사고 배후는 경찰의 수사로 뒤늦게 드러났고, 교사범 A씨 등은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6월 등 실형을 선고 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A씨는 안전을 위해 당국의 허가도 없이 권총 모양의 가스분사총을 소지하고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C씨 등 헌인마을 주민들은 모든 사건의 배후로 당시 시행사 대표 D씨 등을 지목하고 있다. D씨가 수십 억원대 철거용역을 밀어주는 대가로 몹쓸 짓을 시켰다는 것이다. A씨는 사건 1년여 뒤 또 다른 회사와 공동으로 D씨 측과 60억원대 철거용역을 맺었다. 2009년 4월 구속된 뒤에는 그의 부인이 용역 계약을 그대로 갱신해 물려받았다. D씨가 청부폭력 등에 관여한 정황은 A씨 판결문에 적시된 상태다.

D씨는 2010년 9월쯤 시공사 2곳과 의문의 ‘합의서’도 쓴다.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합의서에는 ‘철거 및 명도 현장의 불법행위와 관련해 발생한 비용을 지급하기로 합의하며, 그 금액은 30억을 한도로 한다’고 적혀있다. 시공사 고위 간부였던 E씨는 합의서상 ‘비용’의 용도에 대해 “A씨에게 지급하려 했던 돈으로 기억한다”고 털어놨다. E씨는 “A씨가 구속된 뒤 사무실로 사람들이 찾아와 (시행사 측과) 약속한 대가를 대신 내놓으라 요구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D씨는 “A씨에게 폭력 등을 교사하거나 그런 목적으로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현재까지 철거용역비 중 30억원 가량이 전달된 게 전부라는 설명이다. D씨는 “몇 가구 불을 낸다고 해결될 사항이 아니었다”며 “내 이름이 들어간 판결문에 대해서도 법원에 수정을 요청하려다 시간이 지나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D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헌인마을이 국토교통부 ‘뉴스테이’ 사업지구로 지정되도록 청탁을 해주는 대가로 최순실씨의 ‘독일 집사’로 알려진 데이비드 윤(49ㆍ한국명 윤영식)씨 측에 3억원을 건넨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헌인마을 주민들은 시행ㆍ시공사의 불법행위 관여 정황에 대해, 검찰이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의 교사로 교통사고를 당했던 C씨는 “판결문 등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대한민국에 정의가 살아있는지 의문”이라고 허탈해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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