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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코끼리도 깨달은 나이듦의 순리, 사람은 왜 깨닫지 못할까

입력
2015.09.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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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메 하이네 글,그림ㆍ이지연 옮김ㆍ베틀북 발행ㆍ60쪽ㆍ8,000원
헬메 하이네 글,그림ㆍ이지연 옮김ㆍ베틀북 발행ㆍ60쪽ㆍ8,000원

우물쭈물하다가 반백년을 넘겨 살았다. 마음은 여전히 철부지인데, 몸이 점점 부실해진다. 즐비한 인생 선배들 앞에 민망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이젠 기와 열의 발산을 줄이고 욕망도 일도 줄여 가라는 자연의 뜻일 게다. 허나 생계가 도통 줄지 않으니 일 또한 줄일 수 없고, 기와 열을 수렴할 여유도 없다. 이렇게 순리를 거슬러도 될까?

그림책을 펼쳐 든다. ‘코끼리 똥’. 늘 배고픈 아기 코끼리가 살았다. 와구와구 먹고 벌컥벌컥 마시고 쿨쿨 잤다. 그리고 아침이면 일어나 똥을 누었다. 끙! 커다랗고 둥근 똥 한 개. 코끼리는 날마다 어김없이 딱 하나씩 똥을 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커다랗고 둥근 똥 두 개가 나왔다. 코끼리는 기뻐 껑충 뛰었다. 신이 나서 똥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날이 생일이고 이제 두 살이 되었다는 것을. 코끼리는 더 큰 어른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이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코끼리는 그렇게 해마다 똥의 개수를 늘려 갔다. 어느덧 나이 쉰에 똥 50개! 그런데 쉰한 번째 생일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커다랗고 둥근 똥이, 49개에서 그치고 만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 해가 더 가고 쉰둘이 되어서야 코끼리는 깨달았다. 정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0에서 시작해 정점까지 왔으니, 이제 다시 0으로 수렴해 갈 때. 더하고 빼서 0이 되어가는 진리를 깨달은 코끼리는, 행복했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해 갔다. 이윽고 백 살이 되던 날, 코끼리는 똥이 한 개도 나오지 않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똥을 만들 수 없었던 앞 세대 코끼리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코끼리도 깨달은 셈법을 사람이 깨닫지 못할까? 나도 안다. 0으로의 수렴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줄여가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도 줄일 것이 있는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일, 줄일 것이라곤 욕망밖에 없는 우리 장삼이사들은 어찌해야 하나.

신나게 달려오던 코끼리는 둥근 똥이 49개에서 그치고 만 날 깨달았다. 자신이 방금 주어진 삶의 정점을 넘어서 버렸다는 것을. 베틀북 제공
신나게 달려오던 코끼리는 둥근 똥이 49개에서 그치고 만 날 깨달았다. 자신이 방금 주어진 삶의 정점을 넘어서 버렸다는 것을. 베틀북 제공

정점을 넘어선 부모의 급여를 줄여 자식들 일자리를 만들자고 한다. 실효성과 타당성이야 요모조모 따져보면 알 수 있는 일.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게 하자는 사람들의 나이는 몇인지,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그이들이 먼저 급여를 줄이고, 근로자들 기준으로 정년이 넘었다면 알아서 퇴직해 주고, 그래서 그 분야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느는 걸 확인하면 장삼이사들도 코끼리의 깨달음대로 살 용의가 있을 것이다.

코끼리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마는, 그들에게 풀 뜯어먹고 물 마시고 잠자는 조건은 균등하다. 나도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균등한 세상에서, 그림책이 알려준 순리대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격렬하게’ 순리대로 살고 싶다.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의 수학적 실수를 발견할 수 있다. 눈 밝은 독자들은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진실이 묽어지는 건 아니다.

김장성ㆍ그림책 작가(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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