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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어도 띄워라’… 한국형 헬기 개발 총체적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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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어도 띄워라’… 한국형 헬기 개발 총체적 부실

입력
2017.07.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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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청, 결빙 성능시험 없이 배치

뒤늦게 기준 미달 많자 납품 중단

그러나 업체 보완 약속에 봐주기

“전력화 재개 위해 논리 만들어”

못 바꾸는 안전 규격까지 변경

방사청장 등 배임 혐의 수사 요청

기체ㆍ엔진 등도 검증 않고 방치

6년간 1조2950억원 들여 개발

검찰 압수수색 당한 KAI가 주관

2012년 말 실전 배치된 첫 한국형 다목적 헬기 ‘수리온’의 개발ㆍ전력화 과정 전반에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특히 비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기체 표면이 지나치게 얼어붙지 않도록 막는 성능이 떨어지는데도 당국은 배치를 밀어붙였다.

16일 감사원이 공개한 ‘한국형 기동헬기(수리온) 비행 안전성 등 감사 결과’에 따르면, 수리온 체계개발 사업을 총괄한 방위사업청은 실제 비행 시험을 통해 결빙(結氷) 환경에서의 비행 안전성을 입증한 뒤 수리온을 전력화해야 하는데도, 6개월 정도 걸리는 이 시험을 사업 일정 등을 핑계로 3년 동안 미루다 결국 성능을 입증하지 못한 채 2012년 12월 수리온을 육군에 실전 배치했다. 이는 이후 세 차례 발생한 추락 사고의 직ㆍ간접적 원인이 됐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뒤늦게 벌인 성능 시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육군에 배치된 지 근 3년 만인 2015년 10월 미국에서 실시한 결빙 성능 시험 결과, 101개 항목 중 30% 가까운 29개 항목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방사청은 2016년 8월 수리온 납품을 중단했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뒤 장명진 방사청장은 결함 해소를 위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는데도 납품 재개를 승인했다. “2018년 6월까지 성능을 보완하겠다”는 개발 주관 방위산업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약속만 믿고서다.

전력화 재개 방침을 먼저 정한 방사청이 이에 맞춰 논리를 만든 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육군 등 군 당국의 동의를 유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예컨대 2016년 10월 군 당국에 전력화 재개 관련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내면서 근거 없이 “결빙 환경에서 20분 이내는 안전 비행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식이었다.

봐주기 정황은 또 있다. KAI가 체계결빙 성능 규격 완화를 부탁하자 안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 없이는 못 바꾸는 규격인데도 방사청은 변경 가능한 일반 사항으로 처리하고 적용 시점도 2018년 6월로 유예해 줬다.

그 결과 결빙 성능이 규격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수리온이 계속 전력화됨에 따라 비행 안전성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됐다고 감사원은 꼬집었다. 또 방사청이 결빙 규격 적용을 미뤄주는 바람에 해당 기간 지체배상금 4,571억원을 업체에 물리지 못하게 된 데다 방사청이 비용 부담 주체 합의 없이 수리온 전력화 재개를 서두른 탓에 이미 배치된 수리온 개선 비용 207억원도 국가 재정에서 나갈 가능성이 생겼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장 청장에게 성능 미달 장비가 도입돼 안전을 위협하거나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요구하고, 수리온의 비행 안전성이나 전력화 필요성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관련자 2명을 징계(강등)할 것도 요구했다. 아울러 감사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21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장 청장 등 3명을 수사해줄 것을 검찰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메인 로터 블레이드(주회전 날개)가 기체에 닿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데다, 육군은 사고까지 치르고도 한동안 내버려두는가 하면 ▦내구성이 기준에 미달하는 소재로 윈드 실드(전방 유리)를 만드는데도 ADD가 검토에 소홀했고 ▦사고 원인 분석 과정에서 엔진의 결함을 확인하고도 육군 등이 후속 조치를 게을리하고 ▦새로 개발한 엔진인데도 ADD가 충분히 검증하지 않는 등 무더기 부실이 정부 쪽에서 발생한 사실도 감사원에 의해 적발됐다.

또 방사청이 전력화 차질을 이유로 국제 기준과 별도로 ‘수리온 감항(안전 비행) 인증 기준’을 새로 만들고, 위성ㆍ관성항법장치 등 71개 필수 장비가 낙뢰 보호 기능 없이 수리온에 장착되도록 ADD가 방치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감사 결과 밝혀졌다.

감사원은 지난해 3~5월, 10~12월 두 차례 감사를 통해 총 40건의 수리온 개발ㆍ운용 관련 부실을 찾아내 조치했다.

수리온은 2006년 6월부터 6년간 1조2,950억원을 들여 KAI가 개발한 국산 다목적 기동헬기로 2012년 12월 처음 육군 부대에 배치됐다. 그러나 지난해 1월까지 다섯 차례의 전방 유리가 파손된 일을 비롯해 2014년 8월 날개가 기체에 닿아 엔진이 멈추고 2015년 초와 같은 해 12월엔 엔진 정지로 헬기가 비상 착륙하거나 추락하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감사 결과 발표가 새 정부가 본격화한 방위산업 비리 수사와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4일 검찰에 의해 대대적 압수수색을 당한 KAI의 핵심 혐의가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부품 단가를 부풀려 24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겼을 개연성이란 점에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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