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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나의 은밀한 우리나라 자랑

입력
2015.10.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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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에서 이르기를 자긍자(自矜者)는 부장(不長)이다.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오래 못 간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우리나라를 자랑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고유의 자랑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자랑거리 가운데서도 셋만 꼽자면 첫 번째는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다. 유신정권 외교관 출신인 그는 국제 스포츠계에서 가장 이름난 한국인 중 한 명이다. 최초로 태권도 10단을 딴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10은 완성수로서 신(神)을 뜻한다. 그래서 어떤 무예든 9단이 최고이며, 아주 걸출한 인물인 경우에만 죽은 후에 10단이 바쳐진다. 살아서 10단을 땄다는 것은 태권도의 신이라는 뜻이다.

태권도는 천하제일의 무예다. 천하제일 무예의 신이라는 것은 우주 최강의 사나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김운용 옹이 앤더슨 실바나 한마 유지로와 싸우더라도 앞차기 한방에 이기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김연아 선수를 제치고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 선정되었을 때 우리 국민들이 보내준 환호와 성원을 보노라면, 나는 김운용 옹을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두 번째 자랑거리는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혁이다. 정규직 노동자도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함으로써 28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고용 확대’를 누군가 ‘고용 학대’라고 알아들은 나머지 우리는 카드 빚을 돌려 막듯 일자리도 사이 좋게 돌려 막을 수 있게 됐다. 쉬운 해고의 가장 좋은 점은 조직 전체의 성장이 둔화되어 우리가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해고되는 처지라면 노동자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내놓지 않는다. 몇 달 뒤면 일터에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삼가는 겸손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사내 정치에 목을 맨다. 실패할 수도 있는 시도를 하기보다는 실적을 부풀린다. 이런 환경이 생산성을 높일 리 만무하다. 경제성장이 중심이던 국가 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이니, 나는 노동개혁을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 번째 자랑거리는 설악산 케이블카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천하제일의 명산이니만큼 케이블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1971년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척이신 분의 독점 관리를 받으며 해마다 70만명의 이용객들이 설악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더구나 올해엔 별다른 이유 없이 요금이 오르면서 더욱 고급화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 나는 설악산 케이블카를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새로운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우려를 느낀다. 이 좋은 케이블카가 또 들어서는 것이 탐탁지 않은 까닭은 환경 훼손 때문이 아니라 설악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설악산 정상에서 처음 한 말은 “이제 서울 올라가야지”였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서울이 설악산보다 높은 모양이다. 명절 때마다 서울 가는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대통령께서 거하시는 도시가 너무 높은 탓에 자동차가 뒤로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케이블카는 설악산에서 서울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러면 케이블카를 타고 서울에서 분당을 거쳐 판교까지 이어지는 세기말적 난개발의 경치를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널리 알려진 선어(禪語) 중에 ‘백척간두진일보’라는 말이 있다. “백척간두에 올라앉은 이여, 그 깨달음은 아직 진짜가 아니라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부처의 세계가 드러나리라.” 당나라 스님 경잠 선사의 말이다. 이 말을 적당히 수정하면서 오늘의 자랑을 마친다. “설악산을 개발하려는 이여, 그 돈은 아직 진짜가 아니라네. 거기서 서울까지 나아가야 떼돈의 세계가 드러나리라.”

손이상 문화운동가ㆍ밴드 요단강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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