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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은 개혁 총리, 한국은 총리 공석

입력
2015.05.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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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국인이 아파트 집 열쇠를 잃어버려 열쇠공을 불렀다. 그러나 열쇠공은 이 집이 본인 집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먼저 신분증과 집 문서를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신분증과 집 문서는 모두 집 안에 있다. 문을 열면 신분증과 집 문서를 보여주겠다는 중국인의 설명에도 열쇠공은 먼저 확인을 해야만 문을 열 수 있다는 ‘규정’을 내 세운다. 실랑이가 이어지자 열쇠공은 관리사무소에 가서 공증이라도 해 오라고 요구한다. 중국인이 관리사무소로 가 보지만 관리사무소도 신분증과 집 문서가 있어야만 본인 집이라는 걸 공증해 줄 수 있다고 답한다. 화가 난 이 중국인은 결국 현관 문을 부숴 버린다.

몇 년 전 중국 TV에서 방영된 코미디다. 중국의 꽉 막힌 규제와 모순된 규정이 얼마나 황당하고 얼마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일은 아직도 종종 일어난다. 최근에는 90대 노부부에게 실제 부부가 맞는지 증명해보라고 한 이야기가 공분을 샀다. 96세와 92세인 쓰촨(四川)성의 한 노부부는 등기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결혼증 제시를 요구 받게 된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한 건 신중국 성립 전인 1946년. 이미 69년을 함께 살아 온 틀림없는 노부부는 자신들이 부부란 걸 증명하기 위해 온 집안을 뒤졌지만 결혼증을 찾을 수 없었다. 동사무소에선 노부부에게 민정부(옛 내무부)로 가 부부 관계라는 증명을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정부에선 69년 전 결혼 관계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공증이라도 받아오면 결혼증 재교부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노부부는 공증처로 걸음을 옮겼지만 공증처에서는 결혼증이 없으면 공증을 해 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공증처는 오히려 노부부에게 동사무소로 가 보라고 했다. 결국 노부부는 ‘뒷문’을 통해서 일을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뇌물을 건넨 후 정식 결혼증을 교부 받기까지 단 30분밖에 안 걸렸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최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비슷한 사례를 소개했다. 해외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간 한 중국인이 출국신고서를 작성하며 비상연락망에 어머니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자가 “이 사람이 당신의 진짜 어머니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이를 증명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리 총리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공무원이 오히려 국민들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질타했다.

중국의 황당한 규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중국이 이제 이러한 규제를 개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리 총리는 행정의 간소화와 권력의 하부 이양 등을 골자로 한 간정방권(簡政放權)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동안 기업과 국민을 괴롭혀온 각종 규제와 규정을 고쳐 경제의 활력을 불러 일으키겠다는 것이 리 총리의 구상이다. 중국은 그 동안 불합리한 각종 규제와 규정 속에서도 기적에 가까운 성장을 해 왔다. 예전처럼 두 자릿수 성장세는 아니지만 여전히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7%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경제의 활력을 제약해 온 각종 규제와 규정까지 사라지면 중국은 또 한 단계 도약할 것이 분명하다. 황당한 규제가 사라지면 황당했던 만큼 개혁의 효과도 클 것이다. 리 총리는 이러한 규제 개혁으로 민간의 창조력을 일깨우고 창업의 원가를 줄인다는 복안이다. 그가 “창업은 정의”라며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을 부르짖는 배경이다.

중국이 규제 개혁을 통한 창조와 혁신의 경제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우린 무얼 하고 있는 지 돌아보게 된다. 중국의 총리는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는데 우리의 총리는 또 공석인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한국도 개혁 총리가 필요하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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