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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잡는 과학] “형 폭력에 우발적 행동” 동생의 주장 뒤집은 핏자국

입력
2017.04.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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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1심서 무죄

술에 취해 돌아온 형이 때리자

아버지가 말리는 사이 칼로 찔러

◆결정적 증거 ‘비산 혈흔’

죽음의 찰나 설명하는 핏자국

옷걸이에 걸린 셔츠 등서 발견

당시 칼과 출혈부 위치 알려줘

◆2심 징역형, 대법원이 확정

혈흔 분석ㆍ부검 등 종합해

“살인의 고의성 있다”결론

2015년 4월 1일 수요일, 고3이던 장민준(가명ㆍ당시 17)군은 잔뜩 취한 채 오전 1시35분쯤 상가건물 2층에 있는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귀가 시간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도, 가족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왜 늦게 들어왔냐” “술은 누구와 마셨냐” 질문을 하는 이도 없었다. 여느 때처럼 그는 현관 오른쪽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동생 지훈(가명ㆍ당시 15)군과 함께 지내는 9㎡(약 2.7평)의 작은 방이었다.

동생은 이불 위에 누워 휴대폰으로 만화를 보고 있었다. 형이 왔지만, 동생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또’라는 표정조차 없는, 무관심이었다. 민준군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동생의 배를 몇 차례 밟으면서 ‘그날의 폭행’은 시작됐다. “담배랑 술 어디서 사는지 아느냐” “지금부터 형이 널 때릴 테니까 알아서 잘 막아라.“ 주먹이 동생의 옆구리를 수 차례 가격했고, 동생은 욕설로 맞섰다. 난장판이었다. 형이 때리면 동생은 저항하고, 아버지는 말리고, 말리는 아버지에게 민준군은 달려들고.

20분이 조금 지난 오전 2시쯤. 동생의 칼에 가슴을 찔린 민준군이 그 자리에서 숨지면서, 소동은 멈췄다. 차라리 만우절의 거짓말이었으면 좋았을 ‘춘천 형제살인 사건’은 그렇게 발생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 최저기온이 6도까지 내려간 그날 거리는 적막하고 서늘했다.

육신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메시지, 혈흔

오전 2시30분쯤 강원경찰청 광역과학수사요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민준군 아버지는 현관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오가는 경찰관들만 제외하고, 겉으로만 보자면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방은 아수라장이었다. 민준군 몸에서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을 다량의 혈액은, 방 안 곳곳을 참혹하게 물들였다. 신장 170㎝가 조금 못 되는 민준군은 사지를 뻗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큰 아들을 머리 쪽에서 제압하며 누르고 있을 때 작은 아들이 큰 아들 옆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 큰 아들이 힘이 빠지면서 엎어졌다.”(아버지)

“작은 방에 무릎을 구부리고 엎드려 있는 형을 아버지가 누르고 있을 때 왼손으로 칼을 잡고 형의 오른쪽에서 서서, 가슴 부위를 1회 찔렀다. 방을 나온 후 칼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동생 지훈군)

“주방에서 작은 아들이 들고 있는 칼을 뺏어 싱크대 안에 던졌다.”(어머니)

가족들은 경찰과 과수요원들에게 폭행과 저항, 그 과정에서 지훈군이 벌인 참극이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살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사건이 고의였는지, 우연이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과학수사요원들은 혈흔에 주목했다. 혈흔형태 분석요원의 임무는 육신이 피로 남겼을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를 해독하는 것. 특히 이번 사건처럼 혈흔이 많을 때는 ‘선택과 집중’이 필수다. 보통은 현장의 벽이나 집기를 기준으로 범행 당시 행위를 경험으로 추정한 뒤 혈흔 그룹을 정하는 방식으로 단서를 하나씩 추적해 나가게 된다.

민준군의 혈흔형태 분석을 담당한 이미정(44) 검시관은 일단 사건 현장을 총 5개(A~E) 구역으로 나눴다. 이 중 작은 방 바닥(B)과 주방 앞 바닥(D) 두 구역은 감식 초반부터 배제했다. 그는 “119대원이 의심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119대원은 엎드려 있던 민준군을 바로 눕혔고 응급처치를 위해 상처 부위에 식염수를 부었다. 칼에 찔렸을 당시 방바닥(B)으로 흘렀을 혈흔 대부분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주방 앞 바닥(D)에 찍힌 혈흔 역시 119 대원의 발자국으로 판명 났다.

주방 싱크대 구역(E)은 어머니의 진술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총 길이 32㎝(날 길이 20㎝) 식칼은 식기건조대와 그 위에 있던 그릇에 매끄러운 경계를 가진 ‘묻힌혈흔’을 남겼다. “칼을 뺏어 싱크대 안으로 던졌다”는 애초 진술과 달리 ‘칼이 (식기건조대 쪽에) 올려져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칼날에 지름 2㎜ 정도의 희석된 혈흔만 남은 점도 이상했다. 증강시약(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혈흔을 채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품)을 개수대와 배수구 주변에 뿌린 결과, 다량의 희석혈흔도 발견됐다. 누군가 칼을 씻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 검시관은 “둘째 아들을 지켜줘야 하겠다는 부모의 절박함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증거물이 훼손된 것만은 확실했다”고 했다.

비산(飛散) 혈흔을 찾아라

죽음의 ‘찰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혈흔은 옷장 구역(C)과 옷걸이 구역(A) 두 군데뿐이었다. 이 검시관은 “가해자나 피해자의 행위를 추정하기 위해,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 ‘비산혈흔’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몸에서 칼이 빠지며 나온 피의 흔적 등을 통해 생기는 비산혈흔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데 결정적이었다.

옷장 구역(C) 혈흔은 비산혈흔에 속했지만 아쉽게도 결정적 단서가 되기 어려웠다. 4개의 핏자국이 발견됐지만, 현장의 다른 검붉은 혈흔과 달리 누런 빛과 갈색을 띈 채 말라 있었다. 옷장 손잡이에 걸린 코트 뒤에서도 건조된 혈흔이 나왔다. 최소한 코트가 그 자리에 걸리기 전에 묻은 혈흔으로, 이번 사건과는 무관했다는 게 현장 과수요원들의 판단이었다. 민준군 아버지는 이후 경찰에서 “예전에 민준이를 체벌할 때 생긴 자국”이이라고 진술했다.

남은 것은 A구역밖에 없었다. 옷걸이 맨 앞에 걸려 있던 흰색 줄무늬 셔츠에, 높이는 1m 가량 지점에 남겨진 3개 혈흔에 과학수사요원들은 사활을 걸었다. 이 검시관은 “전형적인 비산혈흔의 형태였다”고 했다. 혈흔은 긴 쪽을 뜻하는 장축(長軸) 길이가 7~10mm 정도의 타원형, 꼬리가 8시 방향으로 향한 물방울 형태였다. 칼이 몸에서 빠질 때, 혈압 때문에 몸 밖으로 터져 나온 피가 셔츠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묻은 뒤 왼쪽 사선(8시 방향)으로 흘러내렸다는 의미였다.

셔츠 뒤에 걸려 있던 점퍼 소매, 그리고 옷걸이 바로 옆 탁자 위에 있던 종이가방에서도 장축 길이 10~16㎜에 6시 방향의 꼬리를 가진 혈흔이 나왔다. 이 검시관은 “당시 칼의 위치와 출혈부의 위치를 밝혀 줄 결정적인 퍼즐 조각들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과수요원들과 사건 담당경찰은 이 같은 혈흔 분석, 가족들의 진술과 민준군 사체 부검 내용 등을 종합해 그날 밤을 이렇게 결론 내렸다.

‘아버지에게 눌린 채 문 쪽으로 머리를 두고 무릎을 꿇고 있던 피해자는 왼손에 칼을 쥔 가해자로부터 오른쪽 가슴을 찔렸다. 갈비뼈를 부러뜨린 칼끝은 위쪽을 향했고 칼날은 등쪽 갈비뼈까지 닿을 정도로 대부분이 몸 안으로 들어갔다. 낮은 자세로 공격했던 가해자는 칼을 쥔 왼손이 자신의 허리선에 닿을 정도까지 칼을 빼냈으며 이 때 A구역으로 피가 튀었다. 흉부에서 흘러나온 혈액이 B구역에 고였다.‘

한마디로 고의에 의한 살인에 무게를 뒀다.

엇갈린 법원의 판단

그러나 같은 해 7월 3일 춘천지법의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지훈군은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배심원 9명 전원은 사건 당시 지훈군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는 ‘우발적 행위’라고 판단했다.

“힘껏 찌른 것이 아니라 통상적인 힘으로 찔렀는데, ‘우연히’ 찌른 부위가 하필 칼이 몸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부위여서 치명상으로 이어졌다”는 법의관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훈군에 대한 상습 폭행을 일삼았던 민준군의 전력도 참작된 결과였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무엇보다 앞서 과학수사가 내린 결론과는 동떨어진 판결이었다.

석 달 남짓 뒤(10월 28일) 2심 선고는 달랐다.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 힘의 정도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범행 당시 혈흔형태 분석과 부검을 통해 드러난 형제의 위치와 자세, 출혈 부위를 토대로 볼 때 살인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과학수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렇게 깊이 찔렀는데 (우발적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1심 무죄 선고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이 검시관은 자신의 분석에 부합하는 2심 결과가 나왔음에도, 착잡했다고 회상했다. 법정에서 처음 지훈군을 봤다는 이 검시관은 “큰 체격을 생각했는데, 그 어린 친구(지훈군) 키가 160㎝도 안돼 보였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지훈군에게 장기3년, 단기2년6개월을 선고했고, 지난해 1월 대법원은 지훈군의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했다.

춘천=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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