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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시늉·교사도 처음… 허술한 지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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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시늉·교사도 처음… 허술한 지진교육

입력
2016.09.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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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부랴부랴 교육 나섰지만

매뉴얼은 형식적 안내 그쳐 부실

교사도 대피훈련 경험 없어 난감

“정규수업에 실습교육 포함해야”

“‘등교하다 지진이 나면 담장이 무너질 위험이 크니 공터로 가라’는 지시가 전부죠.”

서울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 주모(25ㆍ여)씨는 최근 교육청으로부터 학생들에게 지진대피 계기(契機)교육을 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그는 수업 중 20분을 할애해 학교 안과 밖에서 지진이 날 경우 대피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자신도 지금까지 지진대피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어 학생 지도에 한계를 느꼈다. 주씨는 22일 “교사 역시 매뉴얼 이상의 배경 지식이 없다 보니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지난 12일 발생한 경주 5.8 지진 이후 재난 공포가 엄습하면서 각급 학교에도 비상이 걸렸다. 교육당국은 부랴부랴 지진대피 교육 실시 공문을 내려 보내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내용이 피상적인데다 실전 교육도 시늉내기에 그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2012년 발간한 ‘학교현장 재난유형별 교육ㆍ훈련 매뉴얼’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학교생활 안전 매뉴얼’을 통해 지진 발생시 대피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행동요령을 보면 ‘선생님 지시를 따라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라’ ‘가방ㆍ책 등으로 머리를 보호하라’ 등 형식적 안내가 전부다. 지진 규모와 피해 정도에 따른 대처 방법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실전 대피 훈련은 더 허술하다. 학교들은 국민안전처와 교육부 주관으로 연 2회 합동소방훈련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학교장 재량으로 재난대피훈련을 하는 학교도 있다. 가령 지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하고 모의 대피를 해 보는 식이다. 광주의 한 중학교 교사 황모(31)씨는 “매월 4일 ‘안전점검의 날’에 재난대피훈련을 하는데 미리 훈련 계획을 공지하고 책상 아래 들어가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각본대로 진행된다”며 “재난 대응을 ‘연기’하는 것에 가까워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고교 교사 박모(53)씨도 “화재 대피 훈련을 할 때 소방차가 오는 등 흉내는 내지만 아이들도 모의 상황이라 점을 알고 있어 노는 시간쯤으로 여기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 교육도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강화된 것인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 기회는 훨씬 줄어든다. 고3생 김모(18)양은 정규교육 12년 과정에서 지진대피 훈련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 김양은 “대피 훈련은커녕 매뉴얼도 본 적이 없는데 경주 지진 때 3학년은 야간자율학습을 계속 하라고 해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지진대응 지식을 쌓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는 그 기회가 더욱 없어 실제 상황이 닥쳐도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교육부는 유치원을 포함한 모든 학교에 10월 중 ‘재난대비 계기교육’을 실시하고 11월까지 안전교육이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현장 점검과 컨설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 스스로 위험을 자각하는 인식 변화와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체험교육이 병행되지 않는 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많다. 허억 가천대 안전관리대학원 교수는 “화려한 시각물을 보강하는 것보다 단 몇 분이라도 사고사례 위주로 진행되는 실습교육이 정규 수업시간에 포함돼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예비교사인 사범대 학생들을 상대로 재난교육 과정 이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희순 서울광나루시민안전체험관장은 “매뉴얼의 ABC만 외울게 아니라 지역사회 소방서나 체험센터를 활용해 어릴 때부터 재난대응을 몸으로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지난 21일 경주에서 3.5규모의 여진이 발생하자 울산 북구 매곡초등학교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매곡초는 지진안전시설이 취약한 초등학교로 조사된 바 있다. 뉴스1
지난 21일 경주에서 3.5규모의 여진이 발생하자 울산 북구 매곡초등학교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매곡초는 지진안전시설이 취약한 초등학교로 조사된 바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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