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7.02.16 17:26
수정 : 2017.02.16 18:20

‘설리와 아이유 논쟁’ 학술대회에 250여명 몰린 까닭은?

[사소한소다]<24> 더 다양하게, 더 깊게… 페미니즘 강의 열풍

등록 : 2017.02.16 17:26
수정 : 2017.02.16 18:20

지난 10일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의 정기 학술대회가 250여명의 청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제공

지난 10일 열린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 포스터.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제공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INAKOS)의 2017년 정기 학술대회 현장.

‘반동의 시대와 성 전쟁’이라는 주제로 하루 종일 열린 이날 워크숍에선 오전부터 강의실이 청중들로 가득 들어찼다.

페미니즘을 큰 줄기로 ▦게임 속 여성 캐릭터 고찰 ▦트위터 페미니즘 ▦설리와 아이유를 통해 본 로리콤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등 대중적으로도 친숙하면서도 논쟁적인 소주제를 내건 이번 학회에는 기존 연구자들뿐만 아닌 일반 청중들까지 약 250여명이 몰렸다. 강의실을 급히 더 넓은 장소로 변경했고 자료집도 오전에 동이 났다.

예상 밖 열기에 주최측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학회를 기획한 문화연구자 오혜진씨는 “보통 이런 학술행사는 연구자들끼리만 모이기 때문에 많이 오면 50명 정도”라며 “이번에는 주제를 파격적으로 결정해 10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더 많이 몰렸다”고 말했다.

안전한 연대와 치열한 논쟁의 장, 페미니즘 강의실

페미니즘의 열기는 이제 강의실에서 각종 강연으로 퍼지고 있다. 강남역과 광화문 광장 등 현장에서 싸워 온 여성 단체들은 강의실에서 모여 지난해 활동을 정리하며 숨 고르기를 하고, 연구자들은 뜨거운 현안들을 분석하며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지난 1월과 2월에는 대학과 지역 여성주의 학회, 노동당과 녹색당의 여성위원회, 알바노조, 불꽃페미액션 등 활동가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2017 페미캠프’가 열렸다. ‘페미캠프’는 ‘페미니즘이 궁금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페미니즘 캠프, ‘페미니즘을 더 알고 싶고,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남성페미캠프,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2030 여성페미니스트 캠프 등 세 개의 자매캠프로 구성됐다. 주최측은 남성 페미캠프 70명, 여성페미니스트캠프 160명 등 총 300여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2017 페미캠프 기획단의 김동희씨는 “2박 3일간 이뤄진 여성 페미니스트 캠프에는 활동가 뿐만 아니라 이제 막 페미니즘을 접한 사람들도 많이 참석했다”며 “외모에 대한 평가부터 모든 영역에 걸쳐 여성혐오가 이뤄지는 사회에서 싸우느라 힘들고 피곤함을 느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들만 모인 캠프에서 한 꺼풀 벗어놓고 놀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강연자들도 페미니즘 강의 수요의 폭발을 실감한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공저한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포럼이나 좌담을 제외하고도 2015년에는 40회, 2016년에는 60회나 특강을 나갔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충남 아산시 아산늘푸름수련원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열린 ‘2030 페미니스트캠프’에서 참가자들이 ‘친해지는 춤 배우기’시간에 서로에게 스트레칭을 알려주고 있다. 2017 페미캠프 제공

2017페미캠프 포스터

긴급한 페미니즘 이슈 소화 못한 학계 대신 주목 받는 외곽

페미니즘 강연의 수요는 2015년 ‘메갈리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을 시작으로 늘어나기 시작,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 후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긴급 집담회에는 20대 초반 여성들을 중심으로 400여명이 몰리기도 했다.

이들은 왜 강의실로 모이는 걸까. 손 연구원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거나 자신의 삶을 페미니즘의 언어로 설명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소화할 역량이 제도권 대학에 충분히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계 밖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갈급함이 페미니즘 강연의 수요로 이어지는 것 같다”며 “강연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페미니스트들이 혐오 발언이 없는 곳에서 서로 안전함을 느끼며 교류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페미니즘 도서의 판매량 증가와 더불어 페미니즘 논의 주제와 난이도가 다양해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발표한 ‘성ㆍ연령별 판매권수 점유율’(종이책 기준)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10~40대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책을 더 많이 구매했다. 특히 여성학ㆍ젠더 분야 도서 구매자는 2030 여성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여성학ㆍ젠더 분야 도서 구매자 중 20대 이상 비중은 2014년 12.9%에서 2016년 42.5%로 3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독자층으로 떠올랐다.

‘반동의 시대와 성 전쟁’ 워크숍을 기획한 오씨는 “2015년과 2016년에는 입문서부터 학술서까지 다양한 페미니즘 도서가 출판됐는데 특히 2015년 번역, 출판된 900여쪽에 달하는 게일 루빈의 학술서 ‘일탈’은 3쇄까지 찍었다”며 “아직 ‘여성혐오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포럼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성년자 성애’ 등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도서가 3쇄까지 찍은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즘의 이해 수준이 다양해지면서 더 세밀한 주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지고 있다”며 “가령 영화 ‘아가씨’가 페미니즘 영화로 극찬 받았지만 ‘레즈비어니즘을 액세서리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지점, 미국에서 논란이 된 트렌스젠더 화장실, 미성년자 성애 등 난이도가 높고 구체적인 다양한 주제들이 페미니즘 논의의 현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열리는 각종 페미니즘 강연들의 포스터. 왼쪽부터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북토크, 페미니스트시각으로 읽는 한국현대문학사, 페미니즘, 정치의 패러다임을 ‘싹’바꾸자!.

페미니즘 강의 열풍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13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가 10회에 걸친 연속 강좌로 마련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는 사전 등록자만 500여명에 이르고 매 강의마다 80명 이상이 참석하고 있다. 오는 23일에는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에서 ▦낙태죄 폐지운동 ▦월경 ▦여성노동 ▦온라인 성범죄 등을 주제로 한 ‘페미니즘, 정치의 패러다임을 ‘싹’ 바꾸자!’가, 다음달 11일에는 서울혁신파크에서 ▦미성년자 의제강간 ▦메갈리아 미러링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 등을 주제로 지난해 출판된 도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북토크가 열린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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