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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돌연 사임… 반복되는 포스코 CEO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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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돌연 사임… 반복되는 포스코 CEO 흑역사

입력
2018.04.18 15:3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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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새 무슨 일이

“정도 경영이 최선책” 외치던

50주년 간담회 때와 달리

역대급 실적 내고도 갑자기 사표

정권 압력설ㆍ검찰 내사설 등 난무

황창규 회장 경찰 조사도 한몫

정권 바뀔 때마다 중도사퇴

민영화로 정부 지분 없지만

주인 없는 기업으로 인식

정준양ㆍ이구택 등 불명예 거듭

권오준(가운데) 포스코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사회를 마친 뒤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오준(가운데) 포스코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사회를 마친 뒤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3월까지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 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포스코의 새로운 100년을 위해선 최고경영자(CEO)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게 이유지만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갑자기 사표를 던진 권 회장의 행보를 둘러싸고 정권 압력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날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긴급이사회를 열어 권 회장의 거취를 논의했다. 이사회 후 권 회장은 “저보다 더 열정적이고 능력 있고 젊고 박력 있는 분에게 회사 경영을 넘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이사회가 흔쾌히 승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 창립 50주년을 맞은) 포스코가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여러 변화가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중요한 게 CEO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김주현 사외이사는 “격론이 있었지만, 권 회장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결정한 사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다만 향후 두세 달간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있을 것으로 보여 그사이 경영 공백이 없도록 권 회장에게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조6,000억원대의 6년 만의 최대 영업이익을 거두며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불과 20일 전인 지난달 31일 창립 50주년 기념 간담회 때만 해도 권 회장의 태도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CEO) 교체설이 나온다’ 질문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고 정도에 따라 경영하는 게 최선책이라 생각한다. 포스코가 대한민국에 계속 기여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달라"며 의욕을 보였다.

지난 20일 사이 ‘통제할 수 없는 분야’에서 어떤 변화라도 일어난 걸까. 포스코는 이날 공식 보도자료에서 “권 회장이 ‘젊고 유능한 인재가 CEO를 맡는 게 좋겠다’고 사외이사들을 설득했고, 그간의 강행군으로 피로가 누적돼 최근 건강검진에서 휴식을 조언받기도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포스코는 또 “정치권 압력설이나 검찰 내사설은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권 회장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인도네시아, 중국 방문 당시 경제사절단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포스코 안팎에선 새 정부가 무언의 사임 압박을 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전임 정준양 전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국빈만찬과 10대 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 베트남 국빈방문 사절단 등 대통령이 참석한 주요행사에서 배제됐던 것을 연상시켜서다.

여기에 포스코가 추진한 자원개발사업에 이명박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최순실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 등으로 이른바 ‘적폐’ 이미지가 덧씌워진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권 회장과 함께 사퇴설이 제기됐던 황창규 KT 회장이 최근 국회의원 불법 후원 관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정부 소유 지분이 1주도 없지만 ‘주인 없는 기업’으로 인식돼 정권 교체 때마다 CEO의 불명예 사퇴가 거듭되고 있다.

권 회장의 전임인 정준양 전 회장은 지난 2013년 11월 국세청의 동시다발 세무조사 등 압박 속에 임기 1년 4개월을 앞두고 사의를 표했다. 정 전 회장은 이상득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됐지만 작년 11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한 이구택 전 회장도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뒤인 2009년 초 정치권 외압 논란 와중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앞서 김영삼 정부에서 회장을 지낸 김만제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사임했고, 김대중 정부 당시 회장이었던 유상부 전 회장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사퇴할 만큼 포스코 CEO의 중도퇴진은 하나의 전통처럼 여겨질 정도다.

한편 포스코는 권 회장의 사의에 따라 후임 인선 절차에 착수했다. 첫 단계인 ‘CEO 승계 카운슬(council)’을 내주 초 열어 선임절차와 방법 등을 논의하고, 최대한 선임 기간을 단축할 계획이다.

차기 회장 후보로는 권 회장과 함께 포스코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오인환, 장인화 사장과 최정우 포스코켐텍 사장, 박기홍 포스코에너지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를 향한 정치권의 입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누가 차기 회장이 되든 다음 정권에선 또 비슷한 신세가 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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