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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 “정보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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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 “정보의 의미는 무엇일까”

입력
2017.01.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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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ㆍ수학ㆍ문학ㆍ인류학 등 망라

정보 관련 모든 논의들 섭렵

정보가 세상을 풍요롭게 했지만

더한 갈증ㆍ욕구불만 안겨주기도

정보의 대홍수시대, 의미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현 시대의 숙제다. 동아시아 제공
정보의 대홍수시대, 의미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현 시대의 숙제다. 동아시아 제공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 지음ㆍ박래선 등 옮김

동아시아 발행ㆍ656쪽ㆍ2만5,000원

흔히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정보가 귀하던 시절, 단 한 조각의 정보도 어루만지고 쓰다듬던 시대는 갔다. 구글링에만 능숙해도 웬만한 건 앉아서 천리를 내다볼 수 있는 시대다. 그 뿐인가. 굳이 먼저 찾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이미 너를 분석해서 너에 걸맞는 정보를 알아서 척척 대령하겠다는 서비스들도 흔하다.

‘인포메이션’이 남기는 질문은 그래서 거꾸로다. 스마트폰만 켜면 ‘[단독]’이란 이름 아래 ‘나야말로 너희들이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참으로 의미있는 진짜 정보’라고 애써 주장하는 정보들이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의미’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책을 열기 전에 먼저 책의 부제인 ‘역사, 이론, 홍수’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꼭 붙잡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본문만 570여쪽에 이르는 저자의 서술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과학, 수학, 문학, 인류학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정보와 관련된 거의 모든 논의들을 다 섭렵한 화려한 뷔페 만찬이다. 어찌나 화려한 지 까다로운 미식가라 웬만한 음식 다 맛본 사람이라도 만찬장 분위기만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뷔페 만찬에 메인요리가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책인 이상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명확하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어쨌든 책을 읽는다는 건 ‘관점’을 읽는 것이기에 그렇다. 정보의 홍수 시대라면서, 또 다른 정보를 양껏 들이붓는 느낌이랄까.

'인포메이션' 저자 제임스 글릭. 책은 정보의 만찬이다. 동아시아 제공
'인포메이션' 저자 제임스 글릭. 책은 정보의 만찬이다. 동아시아 제공

저자는 정보의 홍수 시대를 가능하게 해준 역사적 경험을 탐험해나간다. 책 서두에 나오는 아프리카의 ‘말하는 북’ 얘기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18~19세기 아프리카에 들어간 유럽인들은 북소리만으로 강을 오르내리는 다른 사람들과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하는 원주민들을 보고 깜짝 놀랬다.

북소리의 언어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놀라운 점을 알아냈다. 말소리와 달리 북소리는 소리의 높낮이만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장황하게 말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말로는 ‘달’이라고 할 것을 북으로 두들길 때는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라 표현한다. 그래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말보다 북소리는 8배나 더 많은 말을 해야 했다.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이 아프리카의 ‘말하는 북’ 사례에 정보의 기초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북소리의 기본 요소는 두들기기, 그리고 두들김 사이의 간격이다. 0, 1로 표시할 수 있는, 비트다. 이는 다른 곳으로 바로 응용이 가능하다. 모스 부호가 있다. DNA는 또 어떤가. DNA는 어떤 사람의 기질이나 특성을 속닥속닥 속삭여서 전달해주는 게 아니다. 비트로 전달한다. 중요한 건 “여기서 말하는 정보란 심리적 요소를 배제하고 물리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한다는 점이다. 정보라는 것이 일견 ‘그게 무슨 정보냐’라고 부를 수 있는 무의미한 기계적 반응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비트는 정보의 도약을 가능케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필요하다. 앞에서 봤듯 비트로 만들어지는 정보가 잘 전달, 인식되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잉여를 필요로 한다. 이 수많은 잉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겐 없다. 이것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수학이다. 잉여는 수학적 패턴으로 흡수, 정리됐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클로드 섀넌, 찰스 배비지, 앨런 튜링, 버틀란드 러셀, 쿠르트 괴델 등을 잇달아 불러내는데,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방대한 조사, 요령 있는 정리, 매력적인 서술에 능하다. 그리고 ‘인포메이션’의 저자답게 의미의 명확한 전달을 위해 이런저런 숨겨진 일화 등 충분히 많은 잉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류는 영혼을 찾아 헤맸다. 허나 그 영혼에서 찾아낸 건 비트였다. 이 쓸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동아시아 제공
인류는 영혼을 찾아 헤맸다. 허나 그 영혼에서 찾아낸 건 비트였다. 이 쓸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동아시아 제공

결정적으로 우리는 ‘이세돌과 알파고간 대국’으로 활성화된 인공지능(AI) 논의를 통해 이미 이런 접근법에 어느 정도 단련되어 있다. 그간 알 수 없는 영혼이 해온다고 믿었던 ‘생각’이란 것을 기계도 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인간의 두뇌 자체가 무생물로 그 기능을 재현할 수 있는 일종의 기계라는 역발상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진술을, 우리는 ‘선뜻’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당혹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뇌를 넘어 개체 단위, 또 집단 단위의 정보에 대해서도 얘기를 이어간다. 자크 모노의 분자생물학, 리처드 도킨스의 밈(문화유전자)이 등장한다.

그 결과 우리가 맞이하게 된 것은 정보로 가득 찬 세상이다. 전에 없이 정보로 충만한 세상은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기도 했지만, 더한 갈증과 욕구불만을 안겨주기도 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정보는 우리에게 ‘무의미한 무질서’로 보이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척 하지만, 갈수록 의미가 사라져가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탄식이 흘러 나온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면 더 지옥 같은 세상이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진짜를 고르는데 일이 필요하고, 망각에는 더 많은 일이 필요”한 “전지전능함의 저주”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는 “우주는 해명됐으나 우리는 유령이 됐다”고 걱정했다. 탄식, 우려, 걱정…. ‘의미’가 모색되어야 할 지점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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