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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한반도 운전석 시험대 선 문 대통령

입력
2017.07.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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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와 압박만으로 풀 수 없는 한반도 문제

냉정한 ‘안보환경영향평가’ 후 대화로 가야

미ㆍ중 협력 틀 이끌어낼 역량과 비전이 관건

문재인 대통령이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6일 오후(현지시간) 주함부르크미국총영사관에서 만찬을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6일 오후(현지시간) 주함부르크미국총영사관에서 만찬을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11일에 걸친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외교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제보조작 사건에 대한 여권 공세에 심하게 삐진 국민의당만 빼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야당도 이례적으로 환영과 지지 논평을 냈다.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80점 대,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도와 대체로 비슷한 수치가 아닐까 싶다.

가장 큰 성과는 북한 핵ㆍ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제재와 압박 못지 않게 대화의 필요성을 부각하고 인정 받은 것이다. 물론 제재ㆍ압박과 대화를 어떻게 결합시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 문제의 복잡성에 비춰 단시일 내에 똑 떨어지는 해법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문재인 정부가 역량과 비전을 갖췄는지가 관건이지만 일단 방향을 잘 잡은 만큼 시간을 주고 지켜보는 게 옳을 것 같다.

북한 문제를 제재와 압박만으로 풀기 어려운 데는 근본적 이유가 있다. 바로 김정은 정권이 두 종류의 인질을 잡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 하나는 서울ㆍ수도권에 밀집된 인구다. 남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가 북한의 장사정포 사거리에 노출돼 있다. 엊그제 뉴욕타임스가 2012년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한반도 전쟁 가상 시나리오는 끔찍하다. 북한이 서울과 수도권 군사시설을 향해 장사정포 공격을 할 경우 첫날에만 6만명,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사상자가 30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 그렇다. 핵이 아니더라도 장사정포로 생화학공격을 한다면 순식간에 수도권은 지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한반도 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게 결코 빈말이 아니다. 요즘은 외부 인질에 일본 도쿄도 포함시킨다. 도쿄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1,000㎞ 내외의 중ㆍ단거리 탄도미사일 수 백기가 실전 배치됐기 때문이다. 김정은 등 북한 정권 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 장사정포와 미사일발사기지 등에 대한 선제타격을 거론하지만 대북 군사공격 시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또 하나의 인질은 바로 북한 주민이다. 미국은 중국에 원유공급 중단 등 김정은 체제 숨통을 죌 최종 수단을 동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대북 송유관을 완전히 폐쇄해버리면 북한의 산업기반이 완전히 붕괴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 경우 수만 수십만 명의 북한 주민이 애꿎게 희생되는 인도적 대참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북한주민의 민생에 필요한 지원은 중단할 수 없다는 중국의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수만 수십만 주민이 굶어 죽는다고 두 손을 들 김정은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아는 얘기다. 인도적 참사 우려가 인권을 중시하는 서방이 아니라 인권후진국이라는 중국에서 나오는 게 아이러니다.

중국은 제재 수위를 높여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는 것도 국익 차원에서 결코 바라지 않는다. 대규모 난민이 동북 3성 지역으로 밀려오는 것도 두렵고, 한국 주도 통일로 한미동맹과 국경을 직접 맞대는 상황도 원치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 한반도에 군사개입을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북한 체제 붕괴로 인한 대규모 난민 발생과 한반도의 혼란은 중국만 아니라 남한 일본 러시아 등에도 재앙이 될 것이다. 제재와 압박 일변도가 초래할 이 재앙적 상황에 대한 냉정한 ‘안보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

결국 대화는 선택이 아니다. 어떤 제재와 압박도 대화의 출구를 향해서 가해져야 한다. 문제는 김정은의 핵ㆍ미사일을 향한 열망이다. 작금 김정은 정권이 보여준 기세로 봐서는 중도 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약한 손오공을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길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함께 참여할 때만 만들 수 있는 부처님 손바닥이다. 한반도 운명을 이끌 운전석에 앉은 문 대통령에게 과연 두 강대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협력하게 만들 역량이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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