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세종시에 머무는 날은 2개월에 보름
경제부총리는 많아야 열흘… 서울 체류가 태반
국과장들 ‘V자 동선’ 기본.. N자, W자 동선도 숱해
기재부도 대책 내놨지만 실효성은 ‘물음표’
한 달에 많아야 4, 5일. 경제 사령탑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 머무는 날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서울에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다른 부처 장관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장관을 따라 해당 부처 간부들도 서울 출장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치권에서 “세종시로 아예 국회를 옮기겠다”는 공약이 등장한 게 결코 무리가 아니다. 세종 시대가 막 오른 지 3년이 넘었지만, 사무실만 세종으로 옮겨왔지 여전히 주요 활동무대는 서울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계속되면서 ‘세종시 국회 이전 문제’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관가에서는 나온다.
세종엔 없는 세종장관들
4일 한국일보가 지난 1~2월 기획재정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3개 경제부처 장관의 일정을 분석해본 결과, 이들이 두 달 동안 세종청사에 머문 날은 평균 15일 정도에 불과했다. 설 연휴 등을 감안하더라도 3분의 1 정도만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나라 전체의 경제 현안을 챙기는 유 부총리는 1월 13일 취임 이후 1월에 나흘, 2월에 엿새 빼고는 모두 세종청사 밖에서의 외부 일정을 챙기고 있었다. 일정이 없는 날이라고 꼭 세종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청사를 찾은 날은 이보다 더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 부총리보다는 나았지만, 김영석 해수부 장관과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도 별반 나을 것이 없었다. 세종을 비우는 일정의 상당수는 청와대나 국회 등 서울에 몰려 있다. 김 장관은 1월에만 세종시 밖(주로 서울)에서만 19건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같은 기간 이 장관은 세종시 외부 공식 일정이 12건이었다.
국무조정실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무회의와 경제장관장관회의 등 주요 국정협의체 회의가 총 273회 있었는데, 이 중 세종에서는 49회 열렸을 뿐이고 70%가 넘는 200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특히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는 참석 대상 17개 기관 중 70%에 달하는 12개 기관이 세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80%(78회 중 62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같은 정기적인 회의 외에도 각종 간담회나 현장 방문은 대부분 서울이었다.
길에서 헤매는 국ㆍ과장
장관이 밖으로 도니 수시로 보고를 해야 하는 간부들도 세종청사를 지키기 어렵다. 장관을 수행해서 현장을 가거나, 현안이 있을 때면 서울로 올라가 장관에게 직접 대면 보고를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국장급 간부는 “M자 동선을 그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오전에 서울 약속이 있어 세종에서 서울로 올라갔다가, 세종시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 다시 복귀한 후, 오후에 국회 일정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 밤에 세종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2회 왕복’이 서울에서 시작되면 ‘W 동선’을 그린다고 표현한다. V자(1회 왕복)나 N자(1.5회 왕복) 정도는 자주 있는 일이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급 간부는 “국회 보좌관이 전화로 불러서 30분 정도 만나는데 오전을 다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KTX 막차를 놓쳐 종종 30만원 넘는 돈을 내고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세종으로 복귀하는 국장도 있다. 한 부처 사무관은 “국회에서 예산을 처리하는 때는 아예 여의도 근처에서 묵게 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부처에서는 가급적 화상보고를 이용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날 기재부는 서울과 세종청사, 국회에 있는 화상회의 시설을 확충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화상 회의를 활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에는 국ㆍ과장은 원칙적으로 세종에 체류하면서 직원들을 직접 지도하게 하는 도제식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금까지도 이런 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별로 실효성은 없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화상보고를 많이 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직접 대면으로 보고를 하거나 회의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회 분원이라도 세종으로”
이 같은 상황에서 세종시의 부처 공무원들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국회 상임위 회의는 세종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국회 전체가 내려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분원 정도는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수부 관계자 역시 “세종으로 부처들이 내려온 지 3년이 됐고, 지금 행정 비효율성 문제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며 “부분적으로나마 국회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들을 아낄 수 있는 방안이 분원 설치”라고 말했다.
세종시 시민단체들도 국회 이전 내지는 분원 유치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종참여연대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국회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어 소수의 국회의원을 위해 다수의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이동하는 기형적 구조로 인해 행정의 비효율성과 혈세 낭비가 고착화했다”며 “각 당은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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