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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 타고 겅중겅중 떠난 세계여행

입력
2016.05.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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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젓가락 같은 죽마를 타고 한 남자가 도시의 난장판을 가로질러 겅중겅중 길을 간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거인의 젓가락 같은 죽마를 타고 한 남자가 도시의 난장판을 가로질러 겅중겅중 길을 간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

마티스 더 레이우 지음

그림책공작소 발행ㆍ40쪽ㆍ1만2,000원

햇살은 따스하고 나뭇잎은 푸르다. 실바람이 아직 여린 초록 가지를 자꾸만 흔든다. 꽃 향기가 흩날린다. 귓가가, 코끝이 간질간질하다. 괜스레 두리번거린다. 아늑하던 방이, 멀쩡한 교실이, 든든하던 사무실이 감옥처럼 느껴진다. 때가 되었나 보다.

자작나무와 전나무쯤 되려나, 나무들이 울창한 숲 속 작은 오두막집에 사는 남자도 그렇게 문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이 남자, 여행 준비가 흥미롭다. 살던 집을 몽땅 뜯더니, 뜯어낸 나무판을 뚝딱뚝딱 못질하여 잇고, 잇고, 또 잇는다. 그가 만든 건 수레도 아니고, 배도 아니고, 발판이 달린 기다란 장대 두 개. 어마어마하게 긴 ‘죽마’다. 맞다. ‘죽마고우’의 그 죽마.

아이들의 놀이도구나 광대의 전유물쯤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죽마는 세계 곳곳에서 널리 쓰인, 꽤 오랜 전통의 교통수단이다. 강이나 늪지를 건널 때나 길이 나지 않은 울퉁불퉁한 지대에서 자못 유용했다. 양치기들이 양떼를 살필 때도 많이 썼고,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장거리여행을 한 사람도 있단다.

하필 그 죽마를 타고, 의미심장하게도 제 집 벽과 지붕과 마루와 문으로 만든 죽마를 타고 남자가 여행을 시작한다. 숲을 뛰어넘고 바다를 가로지른다. 바다 한복판에서 고개를 숙여 하늘거리는 수초와 물고기와 난파선 주위를 맴도는 인어를 보고, 밀림 나무 꼭대기에 걸터앉아 원숭이와 바나나를 나누어 먹는다. 벌목꾼에게 죽마 끝을 잘리고, 천 길 낭떠러지에서 죽마를 줄 삼아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고, 이해관계 복잡한 도시의 난장판을 겅중겅중 가로지른다.

볼거리도 이야깃거리도 많은 파란만장한 여정이다. 제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며, 제 다리보다 긴 보폭으로, 제 온 힘을 다해 균형을 잡으면서 아슬아슬하게 떼는 걸음걸음이다. 연두와 초록이 물결치는 밀림, 메마른 주황빛 협곡, 가파르게 꺾이는 회백색 설산…. 대범하게 죽죽 그은 갈필의 붓 자국이 매혹적으로 창조한 공간 속을 가느다란 검은 선으로 빚은 오밀조밀한 캐릭터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겹겹의 이야기를 엮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눈은 시원하고 마음은 설렌다. 거인의 젓가락 같은 죽마를 타고 한 남자가 겅중겅중 길을 간다. 아,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최정선ㆍ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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