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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육아 달인'? 아빠의 말할 수 없는 비밀

입력
2014.12.3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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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월 육아휴직이 ‘꺾였다.’ 첫 2개월은 복직 전의 아내와 공동으로, 이후 4개월은 주양육자로서 아들과 함께했다. 부산스럽지 않아 어색하던 아침은 이제 자연스럽고, 길디 긴 하루는 이제 짧다. 빠졌던 체중은 회복했고 쉬 빨개지던 얼굴은 이제 아줌마들 사이서 이것저것 같이 할 정도로 두꺼워졌다.

노련한 솜씨로 아들을 먹이고 씻기고 닦이고 놀리는 모습을 목격한 한 지인은 “엄마 없어도 되겠다”고 평할 정도. 겉으론 육아에 이골이 났다면 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이 아빠 속사정은 다르다. 군생활 꺾이면 눈감고도 공중의 새를 맞춘다던데 육아는 그렇지 않은 까닭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들 요구에 부응하자면 ‘사격술’도 더 갈고 닦아야 하고, ‘총’도 신형으로 바꿔야 한다. 부단한 육아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빈약한 아빠의 상상력을 대변하듯 볼품 없는 그림. 문화센터 놀이수업에서 다른 집 그림과 비교해도 부실했는데, 아들이 보고 더 많이 느끼게 해주자니 이 나이에 그림 그리기를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빈약한 아빠의 상상력을 대변하듯 볼품 없는 그림. 문화센터 놀이수업에서 다른 집 그림과 비교해도 부실했는데, 아들이 보고 더 많이 느끼게 해주자니 이 나이에 그림 그리기를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 기술의 결핍에 가슴을 여러 번 쳤는데, 그 중 가장 최근 일은 빈곤하기 그지 없는 이 아빠의 그리기 실력을 새삼 확인하면서였다. 큰 종이에 엄마 아빠가 몸을 그리고 아기들과 머리 어깨 손 발 등의 신체부위를 짚어가면서 익히는 문화센터 놀이수업 시간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어찌나 시원시원하게 잘 그리는지, 누가 봐도 눈 코 입 등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다 그린 그림을 벽에다 붙이는데 절로 맨 구석 자리를 찾을 정도였다. 이 박약한 그림에 아들은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집중을 해야 뭘 느낄 텐데, 아빠 그림에 아들은 시큰둥했다. 아들은 한눈을 팔았고 아빠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싯적 미술수업 시간을 싫어하던 내가 떠올랐다.(그게 이제 와서 발목 잡을 줄이야!)

사실 그리기 실력은 다른 집을 봐도 아빠보다도 엄마가 대개 한 수 위.(이건 왜 이럴까?)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엄마가 그리는 그림에 훨씬 더 크게 반응을 보인다. 문화센터 수업이 아니더라도 크레파스나 볼펜을 쥐고 마구 그어대는 아들의 욕구에 아내가 훨씬 더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복직한 아내는 아들이 잠든 뒤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 복직한 아내의 부재에 아무 생각 없다가도 이럴 때 불쑥 빈자리가 느껴진다.

아내의 빈자리가 더 없이 크게 느껴질 때는 단연 식사 시간이다. 거의 매 식사마다 이 아빠는 가슴을 친다. 자취 때도 요리를 해서 먹기보단 밖에서 사 먹었고, 밖에 나가는 것마저 귀찮을 땐 라면으로 때웠다. 그의 아들이 무슨 죄라고, 이게 아들 밥상에도 비슷한 식으로 적용된다. 물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아내는 아들용 반찬을 두어가지 해놓긴 하지만 아들이 맛있게 먹을 때는 김이 모락모락 필 때뿐이고 냉장고에서 식으면 더 이상 찾지 않는다. 라면을 내놓긴 내가 봐도 참 뭣해서 우동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고, 손 쉬운 달걀 후라이로만 배를 채우게 할 때도 부지기수다. 이도 저도 귀찮을 땐 죽집을 찾는다. 탄수화물에 단백질이 대부분이다. 볶음밥을 해서라도 채소를 좀 먹이라지만, 그 일이 이 아빠한텐 태산 같은 일이다.

이 아빠가 차린 밥상에 아들이 관심을 보이며 달려드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어렵게 끓여낸 미역국에 삶은 콩, 멸치볶음, 시금치무침 그리고 압력솥에서 갓 한 밥을 대령했지만 먹다 말고 하품하고 있는 아들.
이 아빠가 차린 밥상에 아들이 관심을 보이며 달려드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어렵게 끓여낸 미역국에 삶은 콩, 멸치볶음, 시금치무침 그리고 압력솥에서 갓 한 밥을 대령했지만 먹다 말고 하품하고 있는 아들.

아내가 이 사실들을 속속들이 안다면 가만 있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이런 결핍을 인정하기 전에 나도 인정 받아야 할 것이다. 엄마랑 시간을 보낼 때보다 야외 활동이 훨씬 많다는 거다. 추워도 하루에 두 번 정도는 외출을 한다. 그림책과 TV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직접 보고 만지고 밟는 세상이 넓다. 엄마보다 우월한 체력과 운전실력 덕분이다. 결혼식은 물론, 송년회, 지방의 장례식장에도 1박2일로 아들을 대동해 갔다.(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갈 순 없으므로!) 아내가 주양육자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들이다.

이런 아빠의 장점과 단점, 엄마의 단점과 장점이 서로 보완되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 있는 사람이 좀 더 일찍 귀가하는 수밖에 없다. 주말에 딴 약속을 잡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수밖에 없다. 공동육아에 가까운 육아를 하는 수밖에 없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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