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진하 기자

등록 : 2017.09.09 04:40
수정 : 2017.09.18 21:32

[문화산책] "아이돌 저리 가라" 클래식 영 아티스트 전성시대

콩쿠르 우승자 급증에 관심 폭발... 대중과 소통 노력도 한 몫

등록 : 2017.09.09 04:40
수정 : 2017.09.18 21:32

2015년 쇼팽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매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 7월 열린 실내악단 클럽M의 결성 기념 콘서트가 끝난 뒤 열린 사인회의 모습.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로비가 팬들로 가득 차 있다. 클럽M 제공

지난달 18일 열린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개관 1주년 기념 공연은 예매 전쟁을 치렀다.

객석 1,400석이 예매 시작 5분 만에, 추가로 열린 600석은 1분 만에 매진됐다. 치열한 티켓 쟁탈전에서 승리한 관객들은 공연 당일에도 열성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연주를 마치자마자 천둥과도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조성진이 앙코르 연주까지 마친 뒤 무대에서 퇴장할 때 객석에 앉아 있던 한 팬이 그에게 선물을 전달하려다 콘서트홀 직원의 만류에 자리로 돌아올 정도로 조성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한국인 최초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소식이 전해진 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의 인기도 더욱 달아 올랐다. 지난달 29일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의 결성 10주년 기념콘서트가 열린 예술의전당에서 중간 휴식 시간에도 선우예권은 쉴 수가 없었다. 몰려든 팬들에게 사진을 함께 찍어주고 사인을 해 줘야 했다. 12월 20일로 예정된 그의 독주회 티켓은 일찌감치 다 팔렸고, 같은 달 15일에 하루 더 연주회를 열기로 했다.

20, 30대 한국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연이은 국제 대회 입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지고 있다. 팬들은 선물을 전달하고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등 아이돌 좋아하듯 애정을 쏟는다. 이전에는 쉽게 볼 수 없던 풍경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문지영 선우예권,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모두 세계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영 아티스트 전성시대의 대표주자들이다.

국제 콩쿠르 입상 소식에 관심 몰려

‘영 아티스트’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첫 번째 원인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연주자들의 절대적인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2005년 피아니스트 임동민(37) 임동혁(33) 형제가 쇼팽국제콩쿠르에서 공동 3위에 올랐을 때 국내 클래식계가 들썩였다. 이 콩쿠르가 창설된 1927년 이후 한국인의 첫 입상이었다. 그 이후 조성진의 쇼팽콩쿠르 1위를 비롯해 김선욱(29) 선우예권, 문지영(22) 임지영(22) 노부스 콰르텟 등 ‘한국인 최초’가 붙는 콩쿠르 우승자가 지속적으로 배출됐다.

클래식 기획사 크레디아 관계자는 “10년 전에 비해 해외 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연주자들이 매우 많아졌고 매니지먼트 회사도 늘었다”며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대중들도 이런 소식을 접하며 관심이 늘었다는 점이 하나의 변화 양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양적으로 늘어난 연주자의 활동을 국내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연주자들의 소식을 듣거나 활동을 지켜보기 어려웠지만 정보통신(IT)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많이 다르다. 해외 사이트의 스트리밍을 통해 공연 실황을 볼 수 있거나 아티스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근황이 전해지고 있다. 클래식 기획사 목 프로덕션의 이샘 대표는 “예전에는 동등하게 활약하는 젊은 연주자도 적었고, 엄청난 콩쿠르에 입상하고도 한국과 동시대성을 갖기 어려웠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신인류나 다름없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국내 연주자들이 해외에 기반을 두고도 국내에서도 입지를 넓혀 나간다는 설명이다.

결성 10주년을 맞은 앙상블 디토는 실내악계 아이돌로 불려왔다. 크레디아 제공

접근 방식 대중화

미래의 대가들은 전통적인 공연과 녹음에만 집중하던 예전 아티스트들과도 다르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각계 아티스트들과 컬래버레이션 공연을 펼치거나, 연예인 못지않은 화보와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실내악 공연 매진을 이어 온 앙상블 디토는 결성 10주년을 맞아 지난해 말 ‘디토 박스’를 출시했다. 팬들을 위한 ‘굿즈’였다. 그동안 발매했던 음반 11개, 앙상블 디토의 10년이 담긴 히스토리북을 포함해 미공개 사진과 특별 미니 다큐멘터리가 담긴 USB 등이 수록됐다. 올해 결성 10년을 맞은 노부스 콰르텟도 멤버들의 사진이 수록된 수첩을 굿즈로 내놨다.

연주자들이 직접 공연 기획부터 홍보까지 맡아 관객과 소통에 나서기도 한다. 7월 결성 콘서트를 연 클럽M은 서울시립교향악단, 독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 중인 20, 30대 연주자 9명이 자발적으로 모인 실내악단이다. 클럽M은 “전달 방식의 대중화”를 모토로 삼고 있다. 이들은 서울 홍익대 거리 인근에서 버스킹 연주를 하거나 SNS로 실시간 연주를 들려주는 등 젊은 세대에 맞는 소통 방식을 추구한다. 결성 콘서트를 마친 뒤 열린 사인회는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이돌 아닌 연주자. 연주에 더 관심 가져달라” 당부도

영 아티스트 전성시대의 그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소수의 연주자에게만 관심이 집중되거나, 음악 그 자체보다 연주자들이 연예인처럼 소비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한 클래식 관계자는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대중도 공연장을 찾지만 콩쿠르 입상 등 뉴스의 영향이 큰 것 같다”며 “특정 연주자의 티켓은 매진되지만 클래식 전반으로 봤을 때 티켓 판매는 여전히 저조하다”고 했다. 이샘 대표는 “연주자들 스스로 결성해 노력하는 이들은 기획사에서 키운 아이돌이라는 개념과 맞지 않는다”면서도 “관객들의 문화가 아이돌 팬덤처럼 흘러 가면 이들의 음악이 가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 연주자들이 다양한 기획 공연을 선보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서다. 클럽M 리더를 맡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재원(29)은 “콩쿠르에서 우승하지 않아도 좋은 연주가 많다는 점, 클래식 음악을 즐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연예인처럼 관심만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클래식의 저변 확대를 위해 연주자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연주자들의 대중적인 활동의 방향 모색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고민을 나누기 위한 자리도 마련된다. 공연기획사 스테이지원과 봄아트프로젝트가 의기투합해 ‘어떻게 음악계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주제로 한 ‘영 아티스트 포럼’이 11일 열린다. 이날 연사로도 참석하는 김재원은 “국내에서 쭉 연주 활동을 해 온 입장에서, 눈에 보이는 콩쿠르 1등 말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클래식 음악 판을 넓히기 위해 아티스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클래식계 아이돌로 불려 온 앙상블 디토는 지난해 12월 결성 10주년을 맞아 팬들을 위한 굿즈인 ‘디토 박스'를 출시했다. 그동안 발매했던 음반 11개, 미공개 사진 등이 담겼다. 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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