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5.01.01 17:55
수정 : 2015.01.02 05:11

[황영식의 세상만사] 새해 첫 다짐

등록 : 2015.01.01 17:55
수정 : 2015.01.02 05:11

사회적 힘의 원천은 동의와 참여다

건전한 공론 없이 변화는 불가능해

즉흥적 정보ㆍ판단부터 보류해 보자

새해가 밝았다.

해를 넘길 때마다 인위적으로 설정된 경계인 시각(時刻)의 힘을 실감한다. 물리량(物理量)인 시간(時間)과 달리 시각은 추상적 쪼개기의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에 맞추어 보신각 타종이 시작되고, 겨울 밤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10만 명이 보신각 주위에 몰려든다. 지구 경도에 따라 차례차례 세계가 환호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각국 지도자들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개중에는 새해맞이 덕담이나 희망사항을 피력하는 수준을 넘어 역사적 변화를 다짐하거나 예고하는 것도 적잖다. 이 모든 것이 시계바늘이 12월31일 밤 12시이자 1월1일 자정(0시)을 가리키는 시각을 기준으로 삼아 행해진다.

시각이 갖는 이 거대한 힘의 원천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과 동의, 그리고 참여다. 어느 문화에서나 의식(儀式)이 가지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특정 시각을 기준으로 해를 바꾸기로 약속하고, 다수가 그에 동의하고, 의식(意識)으로든 행동으로든 동참해 그 약속을 최종 확인함으로써 비로서 가능해지는 힘이다. 인터넷과 무선통신망이 지구촌을 하나로 엮으면서 약속과 동의, 참여의 폭이 나날이 커지고, 그에 따라 시각의 힘도 커지고 있다.

그나마 시각은 물리적 실체에 기대어 설정됐다는 점에서 반(半)추상적이다. 태양의 공전주기라는 구체적 시간을 잘게 쪼개어 표시한 것이어서, 현재 시각은 나라나 지역마다 달라도 어디서나 그 변화 궤적이 드러낸 총량은 같다. 이에 비해 사회적 담론이나 의식의 힘은 한결 불가해하다. 시각처럼 물리적 실체에 의해 매개된 것도 아니고, 사회적 동의나 참여가 확고한 것도 아니어서 완전 추상에 가까운데도 일단 제기되고 표면화하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얽매고 쥐어흔든다. 그런 담론에 매몰된 개개인이 의식의 자유로운 분출로 해방감을 얻고, 최소한 연대 확인으로 안도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거꾸로 화만 더 쌓게 되었다면 참으로 안타깝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일방적 찬반 담론이 좋은 예일 듯하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찬성하거나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도, 막상 해산 결정에는 크게 놀랐다. 일반적 예상을 넘은 8대 1의 압도적 찬성이 놀라워서나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보아서도, 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민주주의의 종언’ 주장에 공감해서도 아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해산에서 제도의 힘을 실감한 때문이다. 누워 잠자는 듯하던 헌법상 제도가 깨어 일어나 주어진 힘을 발휘하는 광경만으로도 너무 놀라워서, ‘역사적 결정’이니 ‘민주주의의 죽음’하는 더욱 거창한 데까지 생각을 밀고 갈 힘이 부쳤다. 극단적 찬반 담론에서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쟁투(爭鬪) 욕구에 같은 생명체로서의 부러움을 느낄 뿐이었다.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로 국민의 60% 남짓이 헌재 결정에 찬성하고, 20% 남짓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자주 ‘국민의 뜻’을 근거로 들었던 반(反) 권력 주장이 무색해진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친(親)권력 세력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도 아니다. 단순히 정치적 선호를 물었다면 몰라도, 헌재 결정에 대한 인식처럼 일정 수준의 지식기반을 요구되는 사안에서 여론조사는 쓸만한 근거가 아니다. 전문적 식견이나 구체적 이해에 근거하지 않은 판단이 얼마나 허망한지는 보름도 안 돼 관련 논의가 사라진 데서 알 수 있다.

새해를 맞아 각계에서 온갖 다짐과 바람이 잇따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사회의 최대 불행인, 무슨 일이건 일방적 찬반으로 의식과 행동이 갈려 다투는 상황부터 개선되기를 바란다. 비난보다는 비판이 존중되고, 정치성향과 사회정의에 대한 시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예의로라도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미래를 향한 어떤 개혁과 변화의 모색도 설 자리가 없다.

객관적 환경은 이런 소박한 바람조차 가로막는다. SNS에 덧붙여 종편까지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건전한 공론의 장을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선택되고 과장된 정보나 판단에 동의하거나 참여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결단을 새해의 첫 다짐으로 내세워도 좋겠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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