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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위험사회에서 사고발생과 국가책임

입력
2017.12.10 13: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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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事故, accident)는 피할 수 없었다. 인간이 문명이란 것을 이루면서 모여서 살아온 이후 지금까지 사고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시기는 없었다. 야경국가 시절은 물론이고, 근대 복지국가 시절, 그리고 현대 위험사회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사고를 피할 수 없다면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사고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사고의 사회적 비용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구분된다. 사고를 피하기 위해 각 행위주체가 주의의무에 들이는 비용과 그 주의의무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확률로 발생하는 사고 손해의 기대값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국가는 두 가지 정책수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각 행위자들의 주의의무를 사회적으로 최적인 수준으로 유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주의의무 수준에도 확률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와 관련해서 대통령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 책임이라고 여겨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원론적으로는,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타당한 말씀이다. 완연한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의 해상침몰사고는 그것 자체로 너무나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종류의 사고에 대해 국가가 무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야 하는 전제조건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사고 관련 각 행위자들의 주의의무 수준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음이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고로 인한 손해를 국가가 완전하게 배상할 수 있음이다. 첫 번째 전제조건은 국가가 모든 국민들의 일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그 정보에 터 잡아서 각 개인들의 선택을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 전제조건은 국가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사고로 인한 손해에 대해 최종적 배상책임을 지며, 그 배상책임에 드는 재원을 세금의 형식으로 국민들로부터 징수함을 의미한다.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2017년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관한 모든 정보가 국가에 의해 수집되고 각자의 선택이 어떤 형태로든 국가에 의해 제어되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현대 위험사회에서 피할 수 없이 발생하는 모든 사고로 인한 손해를 기꺼이 조세의 형식으로 분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지금 정부의 탄생에는 지난 정부 시절 국가가 세월호 사건에서 적시에 필요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탄생한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한 해상사고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선언한 바와 같은 국가 무한책임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자유의 희생이 매우 크고, 부담해야 하는 재정적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 문제는 그 희생과 비용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사고를 방지할 수도 없고, 발생한 사고에 대해 결국 국가가 책임지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국가가 특정한 종류의 사고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관심과 비용을 지불하는 사이에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확률과 피해의 크기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다시 우리는 선택의 상황이다. 지금과 같이 국가가 위험사회에서의 사고비용과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 등과 같은 사회적 비용을 모두 감당하는 큰 정부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수행해야 하는 필요한 역할과 그렇지 않은 역할을 구분하고, 꼭 필요한 역할에 효율적으로 집중하는 정부를 선택할 것인가.

어느 시기보다 사려 깊고 현명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주어진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갖춘 리더십이 요구되는 대한민국의 지금이다.

허성욱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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