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주필

등록 : 2015.09.17 17:40
수정 : 2015.09.17 20:26

[황영식의 세상만사] 문재인 대표의 길

등록 : 2015.09.17 17:40
수정 : 2015.09.17 20:26

유신(維新)이든 혁신(革新)이든 같아

당 면모와 속살의 실질 변화가 문제

‘킹 메이커’로 몸 던지는 결단이 중요

새정치민주연합이 중앙위원회를 열어 혁신안을 일괄 의결했다.

앞으로 당헌ㆍ당규에 담겨 새로운 행동양식을 형성할 규범이다. 지도체제 개편과 공천방식 변화 등 제1야당 내부에 미칠 영향이 만만찮은 중대 사건이다. 그런데도 여론의 관심은 온통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1차 관문을, 그것도 욕설과 고함 속에서 같은 편의 박수로 통과한 데 쏠렸다. 친노ㆍ비노 갈등이 깊어져 분당사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암울한 예측이 잇따른다.

문 대표 스스로 부른 화(禍)다. 혁신안 비판론의 실질이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임이 분명해지자 날린 회심의 일격이 9일 긴급기자회견으로 발표된 재신임이다. 퇴진 여부를 국민과 당원의 뜻에 맡기겠다는 제안은 일견 결연해 보였다. 국민여론조사와 권리당원 투표를 통한 재신임 투표와 함께 중앙위의 혁신안 처리 결과에도 대표직을 걸겠다고 했다. 잠시 얼떨떨했던 지지자들은 이내 박수를 쳤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있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중앙위의 혁신안 가결은 당내 세력분포상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었다. 비노 세력의 ‘준동(蠢動)’으로 친노 외곽 일부가 동요할 우려마저 ‘재신임 카드’본래의 지지결속 기능에 힘입어 해소됐다. 권리당원 다수가 자신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은 물론, 그의 진퇴에 별 관심 없는 국민이 적극적 반대의사를 표할 가능성도 낮다. ‘관문’이란 과장에 익숙한 보도 관행에 가깝다.

비노의 반발이 들끓고 “혁신이 유신으로 변질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문 대표와 친노는 발끈했지만, 국외자의 눈은 다르다. 야당과 반정부 세력의 반대를 억누른 채 행해진 국민투표에서 ‘유신헌법’은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비노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쓴 ‘혁신안+ 문재인 재신임’은 중앙위에서 박수로 가결됐다. 겉모습이 닮았고,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도 비슷하다.

실은 ‘유신’하면 ‘10월 유신’을 떠올리는 언어감각을 빼고 보면 ‘유신’이든, 혁신이든, 개신(改新)이든, 개혁이든 다 같은 말이다. 케케묵은 폐습을 뜯어고쳐 새롭게 하리라는 다짐이다. 독재자마저 그 아름다운 뜻에 끌려 갖다 붙였다. 통 큰 지도자라면 “그래요, 이번 혁신안의 요체는 본래적 의미의 유신을 하자는 겁니다”라고 의연히 받을 만했다.

문 대표는 그런 기대가 불가능함만 새삼 확인시켰다. 처음은 지난 대선이었다. 그는 객관적 득표력과 무관한 당내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힘입어 후보가 되고 패배했다. MB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비추어 어이없는 참패였는데도 잠시 고개를 숙였을 뿐 오래잖아 당 전면에 나섰다. 두 번째는 4ㆍ29 재보선 참패의 책임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만년야당의 위기감이 팽배하고, 자신을 축으로 한 ‘친노 체질’의 발본적 청산 요구가 분출한 데 대한 그의 대응이 바로 ‘김상곤 혁신위’였다. 모든 것을 문 대표의 책임회피 경로로 보는 비노로서는 어떤 혁신안에나 반발하게 마련이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 문 대표의 정치행로다. 혁신위 멤버인 조국 서울대 교수는 문 대표의 백의종군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문 대표 측근들은 “책임지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손사래를 쳤다. 따지고 보면 문 대표의 현재를 정당화할 유일한 명분이 참된 책임 의식이다. 잇따른 퇴진 요구도, 마땅한 대안이 없던 실정을 감안한 ‘혁신 완수의 소임’을 내세워 비켜갔다.

그런데 현재의 갈등은 말만으로는 풀기 어렵다. 혁신안 확정을 진정한 당의 혁신으로 이어가려면 내부적 행동의 변화가 뒤따라야만 한다. 그 출발점을 문 대표가 찍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당장의 당내 관심은 내년 총선 공천에 가 있지만, 긴 눈은 벌써 내후년 대선에서의 문 대표 행보에 꽂혀 있다. 문 대표가 후보의 꿈을 접고 자신의 가치가 한결 빛날 ‘킹 메이커’를 자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당내에 차기 주자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 가운데 친노 색채가 묽고, 전국적 득표를 기대할 만한 인물을 후보로 키워간다면 얼마든지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문 대표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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