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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재인과 오바마

입력
2017.06.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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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대통령의 머리를 쓰다듬고, 길거리농구를 즐기며, 간이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설명을 듣고, 수시로 시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재임 당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며, 국민과 함께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의 부러움과 질투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처럼 느껴졌다.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쭈그려 앉아 사인을 받을 종이를 찾는 초등학생을 기다려주고, 스스로 윗옷을 벗어 걸고, 시민과 함께 자유롭게 셀카를 찍고 소통하며 기자의 질문을 받는 대통령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낡은 구두, 짝퉁 양말, 마루와 찡찡이와 함께하는 모습은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소통의 정치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인천공항에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국정교과서, 세월호 진상 규명 등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일소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시민에게 이제야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부럽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기 전 문재인을 알고 있던 인사들이 문재인을 잘 알지 못했다는 고백이 잇따랐다. 유시민은 “내가 그를 잘 못 본 것 같다”라고 했고, 노혜경은 “내가 본 문재인은 소극적이고 낯가리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유명 인사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대통령이 말수가 적고, 타인과 스킨십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사람의 공감 능력을 약화시키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거울 뉴런의 활성화를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어떤 문재인이 진짜 문재인인지 모르겠다. 사실 어떤 문재인이 진짜 문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시민과 소통하고, 시민의 관점에서 국정을 바라보려는 대통령으로서 문재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높은 지지율에 너무 취하지는 말자. 퇴임 직전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오바마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재임 8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오바마에 대한 평가는 논쟁적이다. 부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으로 등장한 오바마였지만 부시와 마찬가지로 오바마 대통령은 불평등과 빈곤으로 대표되는 미국 사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해결은 고사하고 균열조차 내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도 미국의 불평등은 낮아지지 않았다.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년대 중반 0.361에서 2012년 0.390, 2014년 0.394로 높아졌고, 빈곤율도 16.7%에서 17.9%로 높아졌다. 영아사망률은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어쩌면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의 실패가 트럼프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 공신일지도 모른다. 진보적 대통령이 8년이나 집권했는데도 현실이 변하지 않았다면 시민은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소통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정치적 행위이지만, 소통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정치가 국가의 부를 권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라면 소통은 그 분배를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집행하기 위한 수단이다. 대통령의 소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소통이 시민을 정치적으로 결집시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소통이 그저 화려한 정치적 수사로 남아서는 안 된다.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소통이어야 한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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