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헌법이 규정한 총리로서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경제ㆍ사회분야 정책을 맡겨 달라고 했고 박 대통령도 동의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한 얘기다. 그는 또 “개각을 포함해 모든 것을 국회 및 여야 정당과 협의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회와 여야 정당은 국정동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박 대통령 수사 문제에 대해서는 “수사와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다만 국가원수인 만큼 절차와 방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후보자의 이 같은 발언은 거국중립내각 구성, 책임총리제 도입, 대통령의 수사 필요성에 대한 정치권과 다수 여론의 요구와 대략 일치한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당장의 혼란을 타개할 방편으로 그의 구상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고 박 대통령의 구체적 혐의와 사건의 진상이 명쾌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 일각의 하야 요구는 국가 혼란을 더욱 부채질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구상과 말만으로 박 대통령의 진정한 의도와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국민 신뢰를 상실해버렸는 데도 여야 정치권과 아무런 협의 없이 김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 3일에는 한광옥 국민통합위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여전히 국정 주도권을 쥐고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비치면서 야당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의구심도 한층 증폭되는 양상이다.
김 후보자 발언과 관련한 외치-내치 역할 분담 또는 내각 통할 및 대통령의 권한 이양 범위 문제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의 생각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바 없다. 정진철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날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이원집정부제 방식이 현행 헌법상 가능한지 모르겠다”며“대통령과 총리 사이에서 대화와 역할분담을 통해 구분될 것”이라고 했다. 모호한 얘기다. 박 대통령이 권한이양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지 않을 경우 총리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야기될 소지가 크다.
더 심각한 것은 박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단행한 개각 및 비서실 인사와 관련해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는 점이다. 야 3당이 인사청문회 거부까지 선언한 마당에 여소야대 구도상 여야 합의 없이 표 대결로 치닫는다면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당의 비주류도 반대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변화한 정치상황과 국민정서에 대해 정치적 고려 없이 개각을 단행한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 야당도 총리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보다 절차 문제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정 혼란을 부추길 의도가 아니라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조속히 여야 대표를 만나 총리 인준과 관련한 이해와 협조를 우선 구하고, 김 총리 후보자가 언급한 대로 그 결과를 수용하는 길밖에 없다. 그에 앞서 김 총리 내각 출범과 관련한 역할분담과 권한 이양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국민에게 밝혀야 할 것이다. 더불어 박 대통령 스스로 최순실씨 국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지 또한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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