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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비판할 수 있는 자격

입력
2017.06.1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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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검증에 나선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

자유한국당의 文 인사 비판 공감 못 얻어

존재감 과시와 과오 덮는 수단 돼선 안 돼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작가 유시민이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됐을 때 그가 국민연금 보험료 13개월 치를 내지 않았다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폭로했다. 그런 사람이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는 것은 후안무치 하다는 면박도 잊지 않았다.

연극인 손숙은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러시아로 공연을 떠난 적이 있다. 장관이 되기 전에 잡았던 일정이라 빠질 수 없었다고 한다. 연극이 끝난 뒤 무대에서 인사하던 그에게 격려금 봉투가 전해졌다. 언론은 뇌물을 받은 것처럼 대서특필했다.

비교적 알려진 사례지만 여기서 두 사람이 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고 격려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정을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 전 장관은 학술진흥재단에서 일하다 그만두는 바람에 국민연금 자격도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뀌었다. 그는 일을 그만둘 때 재단의 관련부서에 질의해 “연금 보험료 문제는 재단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뒤 계좌에서 보험료가 빠져나가지 않자 국민연금공단을 찾아가 “밀린 보험료를 내겠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보험료를 내려 했지만 재단의 착오와 공단의 무성의로 내지 못했을 뿐이다.

손 전 장관이 받은 격려금은 공연 후 출연자가 꽃다발을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난한 연극인에게 제작비 등으로 쓰라며 주는 것인데 연극계의 관례였다. 손 장관은 봉투를 공개적으로 받았고 즉시 옆 사람에게 건넸다. 엄밀히 말하면 봉투가 그의 손을 거쳐갔을 뿐이다. 이를 두고 분별력이 모자랐다고 할 수야 있겠지만 뇌물을 받았다는 식으로 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전후 사정 다 자른 채 누군가를 위선적이라 비판하는 것이 우리의 오랜 일상이었다. SNS를 이용한 정보 공유가 일상화한 요즘 이런 식으로 비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을 한 사람은 시민의 검증을 받고, 언론 보도도 독자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뭇매를 맞을 게 틀림없다.

누구는 이런 현상을 사실 확인과 당사자 인권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게 보지만 누구는 표현의 자유 훼손과 언로 통제라며 불편하게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다. 이미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 비판에는 객관성이,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도덕성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그러나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은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 허물 있는 사람도 얼마든 비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무결점에만 비판의 자격을 줄 정도로 경직된 것도 아니다. 도리어 허물 없는 자만 비판할 수 있다면 비판이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더 많을 것이다.

문제는 비판이 존재감 과시와 한풀이 또는 자신의 과오를 덮는 방편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 일이 우리 눈앞에서 실제 일어났다.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문재인 정부 인사를 검증하겠다며 청문위원으로 등장한 것이다. 소설가 이기호가 ‘누가 누구를 비판하는가’라는 언론기고에서 어안이 벙벙하다 했던 그 장면이다. 당장 최경환만 해도 인사 청탁과 막말, 공천 개입, 가습기 살균제 법안 방해 등 온갖 논란에 휘말리고 최순실 특검법에도 반대했다. 이기호가 최소한의 자기성찰을 거친 인사라야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들이 속한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잘못됐다며 강경 대응 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 투기와 논문 표절, 군 면제 등으로 문제가 됐던 인사들을 적극 옹호했었다. 이들 정당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위장전입을 무려 24회나 했다. 김상곤, 안경환, 조대엽, 도종환 등 문재인 정부의 장관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의혹이 한 둘이 아니지만 자유한국당의 대응은 정치권 너머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인사 정국에서 오히려 상승한 것이 그 증거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자신들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했다면 국민의 반응이 이리 냉담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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