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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이 말하는 '김영란법'... “김영란법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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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이 말하는 '김영란법'... “김영란법 다음엔"

입력
2016.10.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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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쓸모’ 출판기념회 겸한

강연회 통해 법 취재ㆍ소회 밝혀

“한국은 인적 네트워크 강한 사회

‘거절할 수 있는 법’ 만들자 목표

공무원이 제일 좋아할 거라 생각

느끼지 못한 사이 사회 바꿔갈 것”

김영란(오른쪽) 전 대법관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부정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법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김영란(오른쪽) 전 대법관이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부정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법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김영란법은 우리가 느끼지 못한 사이에 사회를 바뀌게 하는 효과를 낼 것입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을 발의한 김영란(60) 전 대법관은 6일 오후 창비 주최로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겸 강연회에서 “공무원들이 김영란법을 가장 반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김 전 대법관이 지난달 28일 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법에 대한 입장을 밝힌 자리다. 당초 저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에 대한 독자 강연회로 만들어진 자리였으나 180명의 청중들은 김영란법에 대한 김 전 대법관의 생각을 물었다. 다음은 강연에 앞서 진행자인 박혜진 아나운서와 문학평론가 송종원씨와 진행된 일문일답.

_김영란법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물론 제 이름이 매일 포털사이트 첫 면에 나오니 부담스럽다. 원작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압력도 느낀다. 원작자이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냐, 여러 의문에 답을 달라는 요구도 이해한다. 하지만 법이라는 게 원래 우리가 오랫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해온 관습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바뀌게 되는 효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같이 지켜봐 주시고 이 법이 잘 되도록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_법 시행 이후 신고 1호로 학생에게 캔커피를 받은 교수 이야기가 있다. 사제지간의 정도 김영란법으로 통제 받나 생각하면 씁쓸하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인) 저도 적용 대상이다. 오늘 강의도 사전신고 하고 왔다.”

_사립학교에서 다른 교수들과 식사도 하고 모임도 있을 텐데 반응은 어떤가.

“저하고 밥 먹는 사람들은 ‘좋다’고 얘기한다. 근대법이 만들어질 때 엘리트들이 입법부를 형성하면서 투표를 해주는 대중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입법했다. 요즘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고 지식대중화 시대인 사회에서 입법부 엘리트들이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 이 한계를 보여준 게 김영란법 입법 과정이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걱정했지만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로 입법됐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민주절차 참여에 새로운 기원을 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_김영란법은 어떤 계기로 나오게 됐나.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힘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를 규제하는 법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조금씩 젖어가는 것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웃도 가깝고 친척도 가깝고 학교 선후배, 동네 어르신 등 농경사회적인 인적 네트워크가 강하다. 그런 사람들이 개인적인 사유를 말하면 직책상 불가능하다고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자는 게 첫 목표였다. 공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규범을 내면화시킬 수 있도록, 정착할 수 있는 규범을 만들자는 것이 계기였다. 공무원 행동강령이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을 법으로 끌어 올리자는 것이었다.”

_누가 가장 반겼나.

“공무원들이 가장 반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청탁을 하면 거절하고, 다시 청탁하면 신고하게 돼 있다. 비싼 선물을 보내오면 돌려보내야 한다. 저도 얼마 전에 누군가 학교로 무거운 소포를 보내왔다. 죄송하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써서 우체국으로 가서 택배로 돌려보냈다. 저를 정말 좋아해주시면 안 보내는 게 좋다.”

_과거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대담에서 부정청탁이 만연하고 계층이동이 불가능한 사회가 안타깝다고 말했는데.

“계층이동이 없는 사회는 역사적으로 망한다. 계층이동을 열어놓은 사회여야만 건강해진다. 닫혀있는 세계는 자멸할 가능성이 있다.”

_선생님이 생각하는 법이란.

“법은 자의를 배제하는 것이다. 연산군이 마을을 허물어버리고 원각사를 사냥터로 만들어버렸는데 이런 자의적인 행동을 못 하게 조문화하는 게 법이다. 법은 사람을 구속하거나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자의적으로 남용하는 걸 막기 위해 있는 것이다.”

_김영란법 이후 또 한국사회에 필요한 법이 있다면.

“김영란법은 거악과 거대한 부정부패를 뿌리 뽑지 못한다. 이건 행동강령일 뿐이다. 거대한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욕구가 있다. 우리 사회에 공정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수준이 높은 국민들이다. 그런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연 후 방청석에서 한 서강대 법대 학생은 “졸업 전 취업한 학생들의 출석인정을 위법으로 보는 등 김영란법이 취지와 달리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 전 대법관은 “사립학교나 언론기관을 (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면서도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은 계속 보완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무엇을 위해 이 법을 만들었는지 입법취지를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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