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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를 망가트리는 가장 완벽한 방법

입력
2015.03.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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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한 배우가 관객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한 배우가 관객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 1932년 출범했다. 영화 종주국 프랑스는 땅을 쳤다. 베니스영화제에 바로 맞대응하려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종전 뒤인 46년 부랴부랴 칸국제영화제를 만들었다. 옛 서독은 체제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 51년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창설했다. 냉전에서 이기고 싶었던 미국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한동안 선점효과에 기대어 베니스영화제는 넘버원 영화축제의 지위를 누렸다. 곧 칸영화제가 추월했고 베를린영화제가 따라붙었다. 초창기만 못하다 해도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의 위상을 오래 지켰다.

2000년대는 추락의 시기였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집권한 뒤 2002년 수장인 알베르토 바르베라가 물러났다. 좌파 성향의 바르베라를 우파 정권이 압박을 가해 쫓아내고 마르코 뮐러를 새로운 집행위원장으로 내세웠다는 해석이 따랐다. 프로그래머들을 비롯해 많은 스태프들이 ‘정권교체’에 반발해 물러나거나 쫓겨났다. 그 중 상당수가 2006년 출범한 로마국제영화제에 합류했다. 신생 로마영화제는 호기롭게 베니스영화제 경쟁자를 자처했다. 같은 시기에 영화제를 개최하며 베니스영화제 힘 빼기에 나섰다.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가 베니스영화제를 맹추격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영화제 관계자 사이에서 “베니스영화제는 더 이상 빅3가 아니다”는 말이 떠돌았다. 명품영화제의 몰락이었다.

올해 20회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영화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 국내 가장 성공적인 문화축제라는 화려한 수식이 따르는 국제행사의 몰골이 요즘 처참하다. 지난 1월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의 사퇴 압력 논란 뒤 이 집행위원장은 곧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1년 반 정도 뒤 자신의 퇴진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 위원장이 물러나면 부산영화제 구성원의 도미노 퇴진 가능성이 크다. 영화인들은 한탄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방자치단체와 갈등을 겪은 뒤 침체에 빠진 전철을 부산영화제도 걷게 됐다고.

영화제를 완벽하게 망가트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2000년대 이탈리아가 보여줬다. 정치적 입김이 베니스영화제의 몰락을 부추겼다. 부산영화제의 급성장 비결은 ‘지원을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전임 시장들의 원칙 고수였다. 베를루스코니는 총리시절 자신의 친구인 불가리아 여배우를 베니스영화제에 초대해 세계 언론의 빈축을 샀다. 부산영화제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곧 보게 될지 모른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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