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혜 인턴 기자

등록 : 2017.05.19 17:45
수정 : 2017.05.19 17:45

'외국인'이 아니라 '내 애인'으로 보면 안될까요?

국제연애 편견에 시달리는 커플들

등록 : 2017.05.19 17:45
수정 : 2017.05.19 17:45

“멕시코 남자 조심해. 동양 여자를 포르노(음란물)로 배운 애들이거든” 6년 전 멕시코로 교환 학생을 가서 현지 남성과 교제했던 강은솔(29ㆍ가명)씨는 학교 선배가 ‘조언’이라며 건넨 말에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강씨의 소식을 접한 선배가 남자친구의 국적을 들어 그의 진심을 왜곡하는 말을 한 것이다. 강씨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망언을 내뱉은 선배가 야속했다”고 토로했다.

해외여행∙교환학생∙해외취업 등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적∙인종이 다른 이들이 교제하는 국제연애는 일상의 풍경이 됐다. 사진은 래퍼 빈지노와 그의 연인이자 독일 출신 모델인 스테파니 미초바. 빈지노 인스타그램

해외여행∙교환학생∙해외취업 등 외국인과 교류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국제연애의 장벽이 낮아졌다. 한 취업 사이트가 2014년 성인남녀 3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참여자 6명 중 1명(16.7%)꼴로 ‘국제연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57.9%가 ‘어학연수 및 유학과정’에서 상대를 만났다고 답했고 ‘지인 소개’(17.5%)와 ‘해외여행’(10.5%)을 통해 만난 경우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국제 연애를 둘러싼 인식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강씨처럼 단지 외국인 애인을 뒀단 이유만으로 왜곡된 편견에 시달리거나 성희롱에 가까운 언어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도를 넘어 선 질문은 이제 그만!

인터넷에 올라온 고민 글과 이에 대한 댓글. 흑인 남성과 교제 중인 글쓴이는 성적인 편견 때문에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네이트 판 캡처

“동양인 남성은 널 만족시키지 못해서 싫은 거야?”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백인 남성과 교제중인 임가희(27ㆍ가명)씨는 이 질문을 받고 화를 내려다 겨우 참았다. 그는 “외국인과 교제 중인걸 밝히면 어김없이 성생활에 관한 질문이 돌아오는데다 남자친구의 국적 때문에 그가 흑인일 거라 상대방이 오해한 경우 성(性)적 농담의 수위가 더 세진다”고 지적했다.

성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도 이들의 목을 옥죈다. 김지원(28ㆍ가명)씨는 어머니의 지인으로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캐나다인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리라는 말을 들었다. ‘문란해 보이니 나중에 결혼 할 때 불이익이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는 “평범한 사진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교제하면 ‘능력자’ 취급 받는다. 애인의 ‘인종’이 일종의 계급이 된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연인의 인종에 따라 편견의 화살표는 다른 곳을 향한다. 2년 전 독일 여성과 교제했다가 현재는 캐나다에서 베트남계 여성과 연애 중인 조영준(23)씨는 상대의 인종에 따라 사람들이 관심 갖는 지점이 달랐다고 지적했다. 조씨는 “백인 여성과 교제 할 땐 속궁합, 외모에 관한 질문을 주로 받았는데 지금 여자친구에 대해선 인종에 더 관심 가지는 것 같다”며 “심지어 ‘베트콩’이라는 조롱을 해서 기분 상한 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인과 인도인의 혼혈인 ‘친디안’ 남성과 만나고 있는 권자영(28ㆍ가명)씨는 부모님이 남자친구의 존재를 아느냐, 허락하셨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권씨는 “질문 속에 부모님이 남자친구의 피부 색을 달가워하지 않을 거란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국제’연애가 아니라 국제 ‘연애’로 봐주세요

다국적 연인들은 ‘우리들의 연애도 보통의 연애에 불과하다’고 외친다. 영화 럭키넘버슬레븐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다국적 연인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 마저 다른 이들에게 재단 당한다. 귀국 후 멕시코인 남자친구와 헤어진 강씨에게 친구가 위로대신 건넨 말은 “이럴 줄 알았다. ‘현지전용’ 애인이었지?”였다. 강씨는 “국적만 다르고 평범한 연애였는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특수한 상황으로 인식해 자기 입맛대로 관계를 해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상대는 널 결혼 상대로 생각 안 하는데 나중에 버림 받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는 “모든 관계가 결혼으로 끝나는 게 아닌데 애인이 ‘외국인’이란 이유 만으로 이런 질문을 감내해야 하냐”고 반문하며 “제발 다른 연인 관계와 동일하게 봐달라”당부했다.

이 같은 편견은 사회구조와 문화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라는 분석이다. 정진웅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사회구조가 변하는 속도를 문화∙인식이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과 한국식 신분제가 맞물린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오늘 날에도 여전히 ‘인종’이나 ‘출신 국가’가 돈∙집안∙학벌처럼 개인의 사회적 신분을 대변하는 계급장이라 여겨지고, 이에 따라 외국인 애인에 대한 반응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공포를 가부장제라는 방패로 방어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민정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특히 여성들이 성적 언사에 시달리는 현상에 대해 “민족 주체성의 대변자인 남성이 민족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의 성(性)을 통제하는 위계의식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봤다. 정 교수는 “여성이 외국인과 교제하는 것을 이런 위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이들을 성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환원시켜버리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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