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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모 기자

등록 : 2018.05.06 11:00
수정 : 2018.05.17 14:07

일가족 연쇄 사망…살인인가, 기막힌 ‘우연의 일치’인가

[일미갤] 1961년 일본 인노시마 일가족 연쇄 사망사건

등록 : 2018.05.06 11:00
수정 : 2018.05.17 14:07


※ 편집자 주 : ‘일본 미제사건 갤러리’는 일본의 유명 미제 사건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노시마 전경. 위키피디아

파라티온은 1930년대 독일 나치가 개발한 유기인(有機燐ㆍ인을 함유한 유기화합물)계 살충제로, 원래 용도는 화학무기였다.하지만 실험을 통해 뛰어난 살충 효과가 입증되면서 농약으로 사용됐다. 파라티온은 적은 양으로도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많은 국가에서 개발과 판매가 금지돼 있다. 허용되는 곳에서도 희석을 통해 파라티온의 독성을 현저히 낮춰야 한다.

1961년 1월8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현 인노시마(因島)의 한 마을. 어른들이 농사일로 집을 비운 사이 무라카미(村上) 일가의 장손녀 요시코(好子ㆍ가명ㆍ당시 4세)가 다다미에 있던 일본식 팥빵 ‘도라야키(どら焼き)’를 먹고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경찰은 아이의 몸을 열어 황망한 죽음의 원인을 따졌다. 부검 결과, 요시코가 먹은 도라야키는 평범한 도라야키가 아니었다. 위 안에서 파라티온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저주 받은 가족

1961년 1월9일. 인노시마 경찰서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마을 주민이었다. “오늘 요시코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죠?” 그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참 이상합니다. 3, 4년 전부터 저 집에서 기분 나쁜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주민이 언급한 ‘기분 나쁜 일’은 죽음이었다. 불과 3년 동안 요시코를 포함해 무라카미 가족 5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이유가 하나 같이 심상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범죄를 의심한 경찰은 무라카미 가족에게 연락해 요시코의 장례를 중단시켰다. 다음 날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요시코에 대한 부검을 진행했다. 경찰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요시코의 위에서 파라티온 성분 일부가 검출됐다. 사인은 급성 농약중독. 누군가 요시코가 먹은 도라야키에 파라티온을 넣은 게 분명했다.

도라야키. 게티이미지뱅크

요시코의 사망은 무라카미 일가에 연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1958년 이후 다섯 번째 벌어진 비극이었다. 1958년 12월,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장남 이치로(一郎ㆍ가명)가 길거리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문자 그대로 객사(客死)였다. 비극의 화살은 이듬해 차남 지로(さん) 가족을 향했다. 1959년 1월, 지로의 차녀가 생후 40일 만에 사망한 데 이어 1960년 2월엔 생후 2주가 된 셋째 딸마저 세상을 떠났다. 1960년 9월엔 이치로의 아내가 질식사로 죽었다. 우동 면발이 목에 걸렸다.

사망한 요시코는 이치로의 외동딸이었다. 3년 만에 한 가족이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됐다. 무라카미 일가는 대가족으로, 아버지 마사키치(正吉) 부부와 장남 이치로, 장녀, 차남 지로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다. 차녀는 일찌감치 결혼해 분가했다. 이치로가 세상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요시코가 먹다 버린 과자를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이 집어먹은 뒤 죽고 말았다. 과자는 안방에서 갖고 나온 바나나 과자였다. 당시엔 그저 해프닝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3년 뒤, 요시코가 비슷한 방식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경찰은 망자 대다수가 여자이고, 상대적으로 지로보다 이치로 가족에 피해가 컸던 점에 주목했다. 분가한 차녀는 일찌감치 용의선상에서 제외됐고, 장녀도 특별한 범행 동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지로의 아내 레이코(礼子)와 지로의 딸들은 피해자로 분류됐다. 요시코와 함께 도라야키를 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레이코와 딸들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곧장 도라야키를 뱉은 덕에 변을 피할 수 있었다. 가족 내부 구성원의 소행이라 확신한 경찰은 용의자를 세 명으로 좁혔다. 마사키치 부부와 차남 지로였다.

드러난 추악한 진실

경찰은 요시코가 도라야키를 먹을 무렵, 마사키치와 지로의 알리바이 파악에 주력했다. 그 결과 레이코로부터 중요한 진술을 확보했다. 요시코가 사망하기 하루 전, 지로가 ‘호리도루(ホリドール)’에 손대는 걸 봤다는 내용이었다. 호리도루는 파라티온 농약의 당시 상품명이었다.

레이코에 따르면, 귤 농사를 지었던 무라카미 일가는 당시 집 헛간에 여러 종의 농약을 불법 보유하고 있었다. 헛간에는 100㏄짜리 병에 담긴 파라티온 원액(호리도루) 20개도 있었다. 요시코가 죽기 하루 전 레이코는 헛간에서 밭에 뿌릴 호리도루를 갖고 나오다 우연히 지로를 마주쳤다. 지로는 레이코의 손에 들린 호리도루를 낚아채며 퉁명스런 목소리로 “이건 내가 가져가”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경찰은 지로가 농약 회사에서 호리도루를 불법 거래한 사실을 파악하고 긴급 체포했다. 지로는 경찰 조사에서 농약 도라야키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살해 목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지로는 “쥐를 잡기 위해 다다미 위에 파라티온을 넣은 도라야키를 놨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모두 내 잘못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요시코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불행한 ‘사고’이며 가족에게 일어난 나머지 죽음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포 3일 뒤, 그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자백 조서를 썼다.


“저는 1월 7일 오후 4시쯤 근처 제과점에서 도라야키 4개를 샀습니다. (중략) 그리고 엷은 포장지에 연필로 구멍을 낸 뒤, 그 곳을 통해 농약을 넣었습니다. 다음날(8일) 아침, 밭에 나가기 전, 저는 창고에 숨겨둔 도라야키를 들고 나와 마루 너머로 도라야키 꾸러미를 다다미 위에 슬며시 내려놓았습니다. 요시코가 목표였지만, 누나나 아내가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여자가 죽은 거니까요.”

지로는 과거 가족들의 연쇄 사망사건도 모두 자신이 벌인 짓이라고 했다. 범행 동기는 지독한 여성혐오였다. 지로는 “여자는 어차피 출가외인이다. 집안 재산 불리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언제부터인가 무라카미 집안에는 여자만 태어났다. 오히려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게 재산 축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궤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로는 요시코를 죽인 것도 집안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여자는 집안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루 빨리 없애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히로시마 검찰은 법원에 지로에 대한 정신 감정을 요청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맡은 히로시마 의대는 지로의 정신이 불안정하긴 하지만, 형사 책임을 면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수사에 탄력을 받은 검찰은 요시코 등에 대한 살인, 살인미수 혐의로 지로를 정식 기소했다. 하지만 나머지 일가 4명의 살인 혐의에 대해선 기소를 포기했다. 자백이 증거의 전부인 상태에서, 수 년 전 일어난 사건을 입증하는 것은 당시 인력, 수사 기술로는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재판 기간만 13년, 그러나…

사건은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가는 듯했다. 1968년 7월, 1심을 담당한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지로에게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혈육을 겨냥한 살인사건이기에 죄질이 나쁘고, 수법도 잔인하다”며 “다만 피고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감안해 15년 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수사 과정에서 지로의 자백이 오락가락한 점을 들어 진술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도라야키 구입 시점이 문제였다. 지로는 범행 전날 오후 4시쯤 인근 제과점에서 도라야키를 사왔다고 진술했는데, 조사 결과 제과점 주인은 이날 오후 1시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간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검찰이 항소하면서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고법의 판단은 1심과 정반대였다. 1974년 12월10일,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원심의 15년 형을 깨고 지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서는 지로가 도라야키에 파라티온을 넣은 방법이 유, 무죄를 가늠할 핵심 증거로 다뤄졌다. 재판부는 “육안 확인이 어려울 만큼 미세한 구멍을 연필로 포장지에 냈다는 건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며 “설령 구멍을 내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어떻게 파라티온을 넣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검찰이 더 이상의 혐의 입증은 어렵다고 판단, 상고를 포기하면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지로는 그 무렵 병상에 있었다. 선고 1달 전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것이다. 지로는 무죄판결 소식을 듣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로의 눈물은 13년 동안의 억울함이 일거에 해소된 데서 비롯된 기쁨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악어의 눈물’이었을까. 답은 지로 본인만 알 것이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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