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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아무도 죽지 않는 내일이 온다면

입력
2016.04.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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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출신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2005년 작품 ‘죽음의 중지’는 첫 장면부터 충격적인 문장들로 시선을 붙든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중략) 스물네 시간이나 되는 하루가 다 가도록 아파서 죽거나, 높은 데서 떨어져 죽거나, 자살에 성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시작되는 소설에서 작가는 갑자기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 군상의 난감한 일상을 생선살 발라내듯 꼼꼼히 그려낸다. 이른바 ‘죽음의 파업’이 실현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된 미래의 도시는 그러나 천국은커녕 지옥에 가깝다. 소설의 중간쯤 등장하는 한 노인 가족이 아직 죽을 수 있는 이웃 국가로 밀입국하는 장면은 죽음의 순기능마저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정말 죽고 싶다”며 죽음이 예전처럼 작동하는 나라를 찾아 떠나는 노인은 길이 끊긴 숲을 헤매다 마침내 국경을 넘어 기쁘게 숨이 끊어진다.

생체의 소멸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거짓말 같은 미래. 최근 과학계는 실제 이렇듯 죽음이 멈춘, 다시 말해 영생하는 시대를 향한 의미 있는 업적들을 쏟아내고 있다. 암을 비롯한 각종 중증질환의 궁극적 정복이 요원한 지금, 이 무슨 성급한 추정이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인간의 DNA구조가 낱낱이 드러난 지 20년이 훌쩍 지났고 수명을 조절하는 염색체 말단 ‘텔로미어(Telomere)’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인류는 서서히 죽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시대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하는 괴변으로 들릴 수 있지만 1818년 여류 작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첫 불꽃이 당겨진 현대의 재생의학과 로봇기술은 망가진 신체부위와 장기를 이미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면역반응의 장벽이 사라지고 이종간 장기이식이 보편화 된다면 일단 ‘육체’의 평균 100년 이상 지속은 이론상 불가능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시사 주간 타임에는 201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14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는 내용의 커버스토리가 실려 화제가 됐다. 노화억제 기능의 신약이 보편화되어 불로장생의 현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노화를 정복하고 궁극적으로 죽지 않는 몸을 만들려는 각종 프로젝트가 억만장자들에 의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성장 호르몬을 주기적으로 섭취하면서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120살 생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도 미 제약사와 손을 잡고 인간이 죽음을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헬스케어 기업 ‘칼리코’를 설립했다. 돈의 흐름에 밝은 이들이 베팅하는 만큼 현실화의 가능성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방증이 된다.

죽음을 제어하는 이러한 시도들에 이어 심지어 죽음을 극복하는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멈출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마저 시작됐다. 원한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는 공상 속 사회가 갑자기 닥칠 경우, 두드러질 의문에 대한 논의도 해외 곳곳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중국 광저우 의대 연구진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인간 배아 유전자를 교정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계는 갑론을박으로 뜨겁다. 죽음을 회피하는 ‘맞춤형 아기’ 생산을 가능케 하는 이러한 연구를 장려할지, 금지할지 가이드라인이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연기하는 기술 발전에 대한 논란 뒤에는 어쩌면 극단적 고령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장수라는 이름의 개인 행복이 반드시 건강한 사회 지속이라는 공동체 목표를 지향할 수 없다는 무시 못 할 수준의 우려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어서다. 모든 질병을 정복하고, 구성원의 긴 수명을 보장하는 미래가 혹시나 죽음을 찾아 국경을 넘는 소설 속 노인을 현실로 끄집어낼 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노인들이 스스로 죄를 짓고 감옥으로 찾아 들어 가는 이웃 일본의 고령사회 ‘막장 드라마’를 보자니 아무도 죽지 않을 내일이 온전히 장밋빛은 아닌 듯하다.

양홍주 국제부 차장대우ㆍ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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