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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무력감 벗고 외교전쟁에 나설 때

입력
2017.08.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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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직관 허락하지 않는 북ㆍ미

괴담 벗어나 엄중상황 해법 찾아야

100여년 전 망국 모습 닮지 말아야

1년 전 미국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와 전쟁 이야기를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고, 그럴 경우 미국이 무력사용을 하지 않은 지 꽤 되어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불안감이 한반도에 조성되고 있다. 북한 군이 미국령 괌 해역에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4발을 동시에 떨어뜨리겠다며, 이달 중순까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김정은이 사인을 하고 그 실행 여부가 확인되기까지 한 동안 한반도는 긴장감이 계속될 것이다.

도화선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핵전쟁을 연상시키는 ‘화염과 분노’ 발언이었다. 미국과의 게임에 늘 생존을 걸고 있는 북한을 거칠게 다루는 그의 의도는 시끄러운 시장(市場)외교로 보인다. 중국을 겨냥한 게임이자, 여론을 이용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엉뚱하지 않다. 상황은 그런 의도를 떠나 최종 결정자인 미국 대통령의 말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데로 흐르고 있다.괌 해역이 공격 당하면 미국은 자국 보호를 위한 자위권 조치를 한국 정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공격받으면 반격하는 것에 중립이란 입장을 밝혀, 공개적으로 오케이(OK) 사인을 보냈다. 괴담 수준이던 북ㆍ미 무력충돌이 더욱 우려되는 것은 양 측 모두 제도적 직관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통상의 사회적, 법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의심받는 지도자들이다. 신뢰를 부여할 인사가 맥 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외에는 보이지 않는 트럼프의 백악관을 미국인들은 ‘작은 북한’이라고 부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달 전인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성과를 말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리지 않은 현실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대북제재)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한 달 역시 무력감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북한마저 한반도 문제에서 남측을 장기판의 졸처럼 여기고, 대화 제안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있다.

때문인지 청와대 주변에서는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 간 문제로 양자가 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이, 북핵 문제는 북미가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현실적인 판단이겠지만, 당사자의 접근법은 아닐 것이다. 미국도 북한도 우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이 괌 공격 위협을 하면서 예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빼놓은 것도 아니다.

우리의 8월은 역사와 안보가 충돌하는 시간이다. 8월15일을 남과 북은 광복절과 민족해방기념일로 지정해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날로 기념한다. 사실 8ㆍ15는 민족분단의 출발점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규정하는 족쇄이기도 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중간에 끼어 국토가 두 동강 난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강화될수록 남북이 구심력을 키워야 하지만, 아직 주파수도 찾지 못하고 있다. 조선 망국을 지켜본 청 말기 계몽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일본이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할 실력을 가진 것만이 문제인가라고 물었다. 냉엄한 국제질서를 직시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큰 나라에 사대하며 중심을 잡지 못한 조선을 비난한 것이다. 역사학자 한명기는 조선왕조가 경험한 전쟁은 국제정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그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데서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지금 상황의 엄중함은 어느 때보다 100여년 전 열강의 소용돌이를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일 3각 동맹에 갇히지 않으려는 기조 속에 일본과 외교전쟁을 벌이며, 동북아 균형자론을 꺼내 미ㆍ중을 상대로 한 큰 게임을 하려고 했다. 이제 취임 100일을 맞는 문재인 정부는 내치에서 적폐청산과 갑을전쟁을 벌이고 있다. 동시에 격동의 복판인 한반도가 다시 역사의 횡포를 당하지 않도록 외교전쟁을 벌여야 할 때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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