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삶과 문화] 어머니에 대한 효를 환기한 불교

입력
2017.09.27 16:18
0 0

예전 ‘천자문’과 함께 가장 먼저 학습되었던 책이 ‘사자소학(四字小學)’이다. 이 ‘사자소학’의 첫 구절이 바로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 즉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네’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부생모국(父生母鞠)’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잠깐! 자식을 낳는 주체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 아닌가? 그럼에도 이러한 표현이 버젓이 사용되는 건 유교가 성씨(姓氏)의 계승이라는 아버지 중심의 부계씨족제(父系氏族制)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교의 구조 속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더 크게 희생하지만 그늘 속에 남을 수밖에 없다.

유교의 핵심 덕목 중 하나가 효이다. 이는 유교가 ‘맨이즘(manism)’이라는 조상숭배를 바탕으로 제도화된 철학이자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의 효 구조에는 남성만 존재하지 여성이 설 자리는 없다. 이는 삼강오륜에 ‘부위자강(父爲子綱)’과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있어도 모자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을 통해서도 분명해진다. 유교사회에서 여성은 제사상을 준비하는 주체이면서도 제사에 참석할 수 없는 다른 성씨를 가진 국외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성중심의 효 전통에 반기를 들고, 어머니에 대한 효를 강조한 것이 바로 동아시아의 불교다. 인도는 중국과 달리 어머니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문화가 있다. 붓다의 수제자인 사리자(舍利子)는 사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사리라는 여성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이다. 이런 사리자라는 표현이 ‘우바제사’라는 이름보다도 더 폭넓게 사용되는 게 바로 인도다.

불교에서 효에 대해 말하는 경전인 ‘부모은중경’은 제목에 ‘부모’가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어머니에 대한 효로만 점철되어 있다. 이 ‘부모은중경’으로 양주동 박사가 가사를 써서, 1930년대에 완성된 것이 바로 ‘어머니 마음’이다. 이 노래는 1956년 ‘어머니날’이 제정되면서 크게 유행했다. 어머니날은 1973년 아버지까지 포함한 ‘어버이날’로 바뀌지만,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어머니만을 기릴 뿐이다. 즉 불교적 영향이 어머니를 중시하는 어버이날 전통을 확립하게 한 것이다.

이외에도 불교의 효와 관련된 ‘우란분경’과 ‘목련경’, 그리고 ‘지장경’에는 모두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하는 자식의 간절한 정성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어머니가 주연이라면, 아버지의 비중은 엑스트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불교에는 최고의 죄악을 다섯 가지로 집약한 5역죄가 있는데, 이 중 첫 번째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십계명’ 중 첫째가 ‘야훼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한 것과 대비된다. 즉 인본주의적 측면과 사회윤리에 대한 강조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점만이 강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어머니에 대한 효의 강조는 남성중심의 동아시아 효 문화 속에서 가히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불교의 효를 대표하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은 ‘절(節)’이라는 명절로까지 승화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불교의 성공적 정착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남성주의 사회 속에서 묵묵히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은 누구에게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어머니’라는 단어에는 아버지라는 단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애잔함이 서려있다. 그 속에는 홀홀단신으로 시댁으로 들어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종교는 민중의 아픔과 함께 시대적 요청에 반응하면서, 사람들을 계몽하고 행복으로 인도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고대의 불교는 인도 전통의 어머니에 대한 효를 끌어내 동아시아적 불교만의 당위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