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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강제징용 현장…제주의 ‘군함도’ 동굴진지

입력
2017.08.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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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군함도’와 함께 일제시대 강제징용이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제징용’하면 태평양전쟁을 먼저 연상하지만 국내에도 강제징용의 흔적은 많다. 제주도는 해안에서부터 한라산 중턱까지 곳곳에 일제 강제징용의 현장이 남아 있다. 이른바 ‘결7호 작전’이라 하여 일제가 일본 본토수호를 위한 최후의 교두보로 제주도를 택했기 때문이다.

일출봉 동굴진지
일출봉 동굴진지

결1호∼결6호 작전 지역이 일본 본토인데 반해 결7호 작전은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제가 본토사수를 위한 작전으로, 제주도를 대상 지역으로 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질 무렵인 1945년 3월 일본군 작전대본영 참모회의에서 연합군이 오키나와를 함락시킨 후 일본 본토인 큐슈 북부로 진격해 올 것이고, 그 중간거점으로 제주를 이용할 것이라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결7호 작전을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 독립 혼성제 108여단 등 모두 7만 5,000여 병력이 제주에 주둔하며 제주도 전역을 군사 요새화하기에 이른다. 그 일환으로 제주도 해안을 돌아가면서 동굴진지를 구축하는데, 이는 상륙하는 미군 함정을 공격하기 위한 일본 해군의 자살 특공기지였다. 대표적인 곳이 송악산과 성산일출봉, 서우봉, 수월봉, 삼매봉 해안 등이다.

알뜨르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어승생악 진지
어승생악 진지

특히 송악산의 경우 해안의 동굴진지 외에 알뜨르에 비행장까지 건설하고, 주변에 격납고와 탄약고, 고사포진지, 지하벙커 등이 만들어진다. 한마디로 송악산 일대는 해안과 오름 사면, 주변의 평지까지 전체를 군사 요새화한 것이다. 당시 만들어진 시설들은 훗날 한국전쟁 때에는 육군 제1훈련소로 이용됐고, 이후 해병부대가 주둔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는 해안뿐만 아니라 한라산 중턱인 어승생악을 비롯해 관음사 주변, 발이오름, 대록산 등 제주도내 중산간 곳곳에도 거대한 진지를 구축했다. 어승생악의 1,169m 정상에는 시멘트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북쪽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데, 당시 일본군이 미군 전투기의 공습에 대항하기 위해 건설한 토치카시설이다. 제주도내 368개 오름 중 현재까지 1/3 가량인 120곳 이상의 오름 주변에 동굴진지가 구축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한라산 중턱까지 군사 요새화한 이유는 1945년 6월 미군의 B-29폭격기가 제주도의 한림 등 일본군 시설에 대한 폭격을 시작하자 해안선을 포기하고 한라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해 유격전으로 시간을 벌고자 했던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미군이 상륙하면 제주도의 청장년들을 한라산으로 끌고 가서 일본군인들과 행동을 같이하며 미군과 싸우도록 할 계획까지 세웠다. 한마디로 옥쇄작전이다.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삼매봉 해안 동굴진지
삼매봉 해안 동굴진지
서우봉 동굴진지
서우봉 동굴진지
수월봉 동굴진지
수월봉 동굴진지

가정이지만 일본의 항복이 늦어지고 연합군이 상륙했다면 제주도의 운명은 오키나와처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경우 일본군과 미군을 합한 희생자 수는 8~15만명, 현지 주민은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제주도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명과 재산피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격전을 펼치려 했던 한라산의 자연도 초토화됐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수많은 진지 구축과정에는 조선인 강제징집 군인들과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피땀과 한이 서려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육지에서 건너왔으나 나중에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제주도민들까지 투입했다. 고령의 노인까지 무차별 동원했다는 증언들도 많다.

문화재청은 2002년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06년 알뜨르 비행장 지하벙커를 비롯한 12군데의 일본군 전쟁 유적을 다시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평화와 인권이 왜 소중한지 말없이 보여주는 유물과 유적이 너무나 많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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