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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과 소방관 현실 노래로… 박기영 “목말랐던 게 뭔지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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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과 소방관 현실 노래로… 박기영 “목말랐던 게 뭔지 찾았죠”

입력
2018.04.02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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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기영은 지난해 낸 ‘취.준.생’에서 고개 숙인 취업준비생의 등을 다독인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교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아동 학대를 경험한 윌 헌팅(맷 데이먼)의 상처를 보듬으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한 것처럼. 문라이트퍼플플레이 제공
가수 박기영은 지난해 낸 ‘취.준.생’에서 고개 숙인 취업준비생의 등을 다독인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교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아동 학대를 경험한 윌 헌팅(맷 데이먼)의 상처를 보듬으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한 것처럼. 문라이트퍼플플레이 제공

“사회 일원으로 음악하고 싶어요”

“나는 준비가 됐는데 어디를 가도 내가 모자라대요.” 가수 박기영(41)은 지난해 겨울 노래 ‘취.준.생’을 냈다. 곡은 부산에 사는 취업준비생 박화연씨 사연으로 만들어졌다. 박기영은 지난해 봄 박 씨로부터 ‘취업이 안 되는 모든 책임을 내게 돌리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란 위로를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박기영은 지난해 4월부터 프로젝트 ‘싱 포 유(Sing for you)’를 진행했다. 관객에게 저마다의 사연을 받아 곡을 만든 뒤 소극장공연 ‘스튜디오 라이브’ 행사 등에서 선보이는 작업이었다. 박기영은 특히 박씨가 보낸 이메일을 한동안 머리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세상의 취업준비생을 위해 ‘네 잘못이 아니야’란 위로를 전하고자 곡을 만들기로 했다. 감정이 벅차올라 녹음을 하면서 눈물도 쏟았다. 박기영의 위로 덕분이었을까.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기영은 “화연씨가 취업을 했단 소식을 최근 들었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박기영의 노래는 낮은 곳으로 향했다. 박기영은 지난 2월 소방관을 위한 공연 ‘악어 라이브’에 섰고, 지난해 가을엔 주민센터를 찾아 반핵을 위해 노래했다.

‘시작’과 산책’ 등으로 유명한 박기영의 노래는 경쾌하지만,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의 무대는 부쩍 묵직해졌다. 박기영은 “사회의 일원으로 음악 생활을 하고 싶다”고 바랐다. 결혼한 뒤 아이를 얻고 ‘워킹맘’으로 살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박기영은 보통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이 길이 “지속 가능한 음악 생활”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깨달음은 공교롭게 치열한 경쟁이 지배하는 무대를 거치며 찾아왔다. 박기영은 MBC ‘나는 가수다’와 KBS ‘불후의 명곡’ 등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내가 가수로서 목말랐던 게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하게” 되면서부터다. 찾은 답은 하나였다.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였어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요.”

일곱 살 딸과 부른 ‘아이 러브 유 투’ 나오기까지

치열했던 무대에서 내려온 박기영은 ‘사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계절마다 신곡을 내는 기획으로, 2016년 ‘자연의 법칙’으로 출발했다. 지난달 28일엔 신곡 ‘아이 러브 유 투’를 냈다. 봄에 낸 만큼 곡엔 따뜻함이 가득하다. 통기타 소리에 맞춰 박기영은 속삭이듯 노래한다. 특별 손님이 낭만을 돋운다. 박기영의 딸 기현(7)이 “아이 러브 유 미 투”라며 옹알이하듯 불러 동심까지 더한다. 딸의 노래를 엄마는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는 스캣으로 받는다. 곡에는 박기영의 웃음소리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모녀의 듀엣은 즉석에서 이뤄졌다. 박기영은 “유치원 끝나고 아이를 녹음실에 데려왔다”며 “‘한 번 불러 볼래?’라고 했더니 ‘응’ 그래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시켜 본 것”이라며 웃었다.

가수 박기영은 신곡 '아이 러브 유 투'를 딸과 함께 불렀다. 그는 '현실 엄마'다. 올해 일곱 살이 된 딸이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면 "1~2월은 비수기라"며 아이를 달랜다. ‘밤도깨비’인 가수 엄마는 육아로 아침잠이 부쩍 줄었다. 문라이트퍼플플레이 제공
가수 박기영은 신곡 '아이 러브 유 투'를 딸과 함께 불렀다. 그는 '현실 엄마'다. 올해 일곱 살이 된 딸이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면 "1~2월은 비수기라"며 아이를 달랜다. ‘밤도깨비’인 가수 엄마는 육아로 아침잠이 부쩍 줄었다. 문라이트퍼플플레이 제공

‘대장금’ 박은혜가 1994년 라디오에 보낸 사연

드라마 ‘대장금’에서 연생이 역을 맡은 배우 박은혜가 아니었다면 ‘가수 박기영’도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4년 박기영과 같은 반 친구였던 박은혜는 ‘친구가 노래를 너무 잘한다’며 라디오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냈고, 이 사연이 발탁돼 박기영은 방송의 기회를 잡았다. 박기영은 “전화로 오디션을 봐 합격했다”며 “PD님이 내 목소리를 좋게 봐 전자음악팀 이오스의 김형중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달 동안 코너를 맡기도 했다”고 옛 얘기를 들려줬다. 박기영은 1997년 1집 ‘원’으로 데뷔했다. 한동안 순탄한 길을 걷다 2000년대 초ㆍ중반 전 소속사와 갈등으로 4년 넘게 활동을 못 했다. “음악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너무 부족하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박기영은 끝까지 무대를 지켰다. 박기영은 올 가을엔 8년 만에 새 앨범도 낸다. 이 앨범 발매에 맞춰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도 연다.

인터뷰 장소로 온 박기영의 손엔 책 ‘보이지 않는 심리’가 들려 있었다. 박기영은 “소설 ‘82년생 김지영’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엔 내 얘기 같아 펑펑 울었다”고 했다. ‘미투(#Me Too)’를 계기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위한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걸쳐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며 지지를 표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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