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 기자

등록 : 2018.05.03 04:40
수정 : 2018.05.04 00:36

[헬로! 아세안] ‘필리핀 경제 버팀목’ 해외근로자… 미국 대신 중동으로

<5> 필리핀 ‘해외근로자’

등록 : 2018.05.03 04:40
수정 : 2018.05.04 00:36

저렴한 인건비•영어 구사로

간호사부터 도우미•노동 등

1300만명 진출 분야 가리지 않아

국내 총생산의 10% 기여

35%가 미국서 일하지만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여파로

최근 중동이 인기지역 부상

중•일도 인력 수입 움직임

가사도우미. 게키이미지

7년 전 필리핀에서 베트남으로 건너온 아멜리아 마티나다(53)씨. 프랑스인 주재원 집으로 출퇴근하며 어린 아기를 전문으로 보는 유모, 집안 청소 등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에 외국인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일거리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때문에 베트남 현지 가사도우미보다 두 배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필리핀 경제 버팀목

마티나다씨가 하루 평균 7시간씩 일을 해서 한달 동안 벌어들이는 돈은 약 600달러(약 64만원). 다른 필리핀 도우미들과 공동 부담하는 집세 등의 생활비를 제외한 300달러를 매달 필리핀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한다. 그는 “내가 보낸 돈으로 가족들이 생활하고, 그 돈이 마을 식료품점을 먹여 살린다”며 “두테르테 대통령도 우리 같은 해외 근로자들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력을 해외로 송출하는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공용어인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때문에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같은 영어권 나라에서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인기가 높다.

필리핀 재외동포위원회(CFO)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해외에 체류중인 필리핀 근로자 수는 1,000만명을 넘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미국의 반이민 정책으로 인력 송출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 수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일각에서는 이 규모를 1,300만명까지 보기도 한다.

지난해 기준 필리핀 인구는 약 1억600만명. 적어도 인구의 10%가 해외에서 외화 벌이에 나서고 있다는 뜻으로, 이들의 본국 송금액은 농업과 관광 외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필리핀 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금줄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보내오는 외화는 경제지표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기도 하다.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14.06%까지 차지했던 이들 송금액은 2011년 10%로 낮아진 뒤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필리핀 GDP는 명목기준 한국의 5분의 1인 수준인 3,100억달러다.

신동준 기자

미국 지고 중동 뜨고

재외동포위원회(CFO)에 따르면 현재 가장 많은 필리핀인들이 나가 있는 곳은 미국. 전체 해외 체류자의 35% 가량이 미국에 자리를 잡았다. 캐나다까지 더할 경우 절반에 육박하는 필리핀인들이 북미에 진출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에미리트 등 서아시아에 250여만명, 동ㆍ남아시아 160만여명,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90만여명,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지역 50만명, 아프리카 6만명 수준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과 함께 최근엔 이들의 선호 지역이 북미에서 중동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최근 베트남 호찌민시로 옮겨온 마리아 로사리오(45)씨는 “중동 국가들은 현지 부자들은 물론 외국인 주재원들로 넘치면서 가정부 수요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며 “그 중에서도 영어가 되는 필리핀 사람들의 인기가 가장 높다”고 전했다.

실제 작년 4월부터 6개월간 필리핀 해외근로자청(POEA)을 통해 해외로 송출된 근로자 4명 중 1명(58만명)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하는 등 전체 130만명이 중동을 선택했다. 해당 기간 전체 송출 인력 규모는 230만명이다. 최근 필리핀 가사도우미 살해 사건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쿠웨이트도 15만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이 선택했다.

두바이, 테헤란 등 중동 지역에서 다년간 생활하고 있는 주재원 강모(45)씨는 “오일머니로 경제를 일으킨 중동 국가들이 ‘포스트 오일 이코노미’로 관광산업을 키우면서 들어선 수많은 호텔과 카페, 식당 등에서 저렴한 인건비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높다”며 “영어 실력은 물론 인도 등 다른 나라 근로자 대비 부지런하고 밝은 필리핀 근로자에 대한 인기가 대단히 높다”고 전했다.

신동준 기자

중국, 일본도 가세

필리핀 근로자들의 진출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관리자, 간호사, 자동차정비 등 전문직에서부터 가사도우미, 서비스, 영업, 공사 현장 인부, 농부, 선원 등 다양하다.

한국은 물론 일본 등 각국이 노령화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사도우미의 경우 1년 이상의 실무 경험과 일정 수준의 연수를 받고 일본어 실력을 갖출 경우 최대 3년 동안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중국도 올해 영어 교사로 활약할 인력 2,000명을 필리핀에 요청해놓고 있다.

‘물컵 갑질’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진그룹 일가의 필리핀 가사도우미 고용 의혹에 대해 법무부가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필리핀 가사 도우미 고용허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는 불법이만 일각에서는 ‘필리핀 내니(유모)’의 합법화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저출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필리핀 출신 입주 가사도우미 허가 문제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고학력 여성들의 출산과 양육 부담을 덜어 경력단절을 완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 놓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한 직장인이 싱가포르 시내의 한 편의점으로 들어서고 있다. 높은 물가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식당이나 편의점, 카페, 호텔 등지서는 외국에서 온 근로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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