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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방관이 피켓 드는 이유

입력
2017.04.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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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은 병원에서 소방대원을 접하는 유일한 곳이다. 그래서 응급의인 나는 현장에 있는 대원들의 노고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대원들은 신고를 받자마자 촌각을 다투며 달려가 위기에 처한 환자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거나 죽은 사람을 수습해야 한다. 매번 예측불허의 상황이 위험천만한 것은 당연하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33명의 소방관이 순직했고, 1,595명이 다쳤다. 이토록 자신과 동료 혹은 환자들의 죽음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정신적인 중압감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기간 35명의 소방관이 자살했고, 전체 소방관의 40% 정도가 외상후증후군에 시달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119 업무 중 화재는 10% 미만이고, 대부분 구급이나 기타 출동이다.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셨거나, 집 문을 여는 등의 흔한 일에도 119를 호출한다. 119의 1회 출동 비용은 30만 원에 달하나,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접근성이 좋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공짜이므로 신고자가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가끔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현장에서 폭행당한 소방공무원은 661명이나 된다. 대원들은 신고자가 언제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당하더라도 직업상 적극적으로 항변할 수 없다. 일선에서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언행을 접하고 상처를 받는 일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국민들이 119 신고 전화 및 대원들의 일 하나하나가 생명과 직결되는 일임을 더욱 깊이 인식했으면 한다.

소방공무원에겐 행정적인 문제도 있다. 최근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이 화두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이는 생각보다 첨예한 행정적,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직은 국가에서 임용한 공무원이고, 지방직은 시, 도에서 임용한 공무원이다. 소방관은 지방직이므로 시, 도 소속이지만 중앙기관인 국민안전처 소속이기도 하다. 일단 체계가 일원화되지 않아, 비번인 소방관이 불려 나와 벤치에 쌓인 눈을 치우는 등의 엉뚱한 업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고, 여름철 해변가처럼 바쁜 곳에 인원을 재배치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인력이나 자원 문제도 있다. 국가에서 예산이 직접 편성되지 않으므로, 지자체는 국가에서 내려온 예산을 나누어 소방 부분에 편성하는데,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지자체일수록 안전 부분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방으로 갈수록 장비나 인원이 부족하다. 서울의 구급차에는 평균 3명이 타고, 지방의 구급차에는 평균 1.7명이 탄다는 통계도 있다. 지방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급여에 있어서도 지방은 수당이 부족해서 억지로 퇴근하거나 체불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해 보이는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은 요원하다. 일단 소방관이 지방직일 때 권력이나 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몇몇 윗선의 반대가 있다. 또한 자원이 풍족한 시, 도는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없으며, 그에 비해 피해를 입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사회의 변방에 있기에 그 목소리가 미미하다. 그래서 정복 차림으로 피켓을 들고 호소하는 소방관들의 목소리는 매번 대중들에게 잊히고 만다.

이것은 안전에 관한 문제다. 게다가 고통 받는 약자에까지 대원들의 숭고한 노력이 닿게 하는, 어쩌면 사회의 분배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안전과 생명에는 빈부격차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소방조직이 정치와 행정의 논리로 오가는 현실과, 그걸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묻혀버리고 마는 것을 볼 때마다 송구스럽다. 현장에서 수고하는 대원들을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과 약자의 입장에 귀 기울이자는 당위성 있는 주장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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