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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ㆍ레이건… 정치색에 물들어 가는 미국의 군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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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ㆍ레이건… 정치색에 물들어 가는 미국의 군함들

입력
2016.05.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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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이 주어진 미 해군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이 주어진 미 해군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

‘버지니아, 일리노이, 워싱턴, 콜로라도, 인디애나, 버몬트…’

미국의 주(州)들이지만 여기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숨어 있다. 바로 미 해군의 주력 잠수함 전력인 배수량 8,000톤급 공격형 핵잠수함 이름이다. 가장 일찍 건조된 버지니아(SSN-774)호의 이름을 따서 ‘버지니아 급’잠수함으로 불리는데, 미 해군은 이 부류의 잠수함에 미국 각 주의 이름을 따서 붙이는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 해군은 보유 함정의 종류와 등급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원칙이 있다. 현재 조달사업이 진행 중인 함정은 9개 부류로 나뉜다.

미국의 주(州)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 버지니아급 공격형 잠수함.
미국의 주(州)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 버지니아급 공격형 잠수함.

먼저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이 돌 때마다 방문하는 미 항공모함. 미국 역대 대통령, 예외적으로 미 해군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연방의원 이름을 붙이는 게 원칙이다. 최근 이름이 붙여진 14개 항모 중 10개에는 전직 대통령 이름이, 2척에는 의원 이름이 주어졌다. 조지 워싱턴(CVN-73),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CVN-69), 로널드 레이건(CVN-76) 등이 대통령 이름의 항모고, 존 C. 스테니스(CVN-74), 칼 빈슨(CVN-70) 항모가 미 해군이 공로를 인정한 정치인을 기리는 선박이다.

구축함도 실존했던 인물 이름에서 짓는다. 다만 해군, 해병대, 연안경비대 소속의 전쟁 용사나 전직 해군성 장관 명단에서 뽑게 된다. 2012년 6월 취역한 마이클 머피(DDG-112) 구축함은 아프간에서 숨진 네이빌 부대 소속 동명의 중위를, 2011년의 스프루언스(DDG-111)는 태평양전투에서 활약한 전직 해군 장성에서 이름이 옮겨왔다.

연안전투함(LCS)은 미국의 주요 도시ㆍ지역명, 상륙강습함은 미 해병대가 참여했던 주요 전투에서 따온다. 최근에는 쿠퍼스타운(LCS-23), 오클랜드(LCS-24) 등의 도시가 신형 연안전투함에 붙여졌고, 미 해군 역사상 최초의 승전인 1804년 트리폴리 해전 이름을 따서 최신형 상륙강습함(LH-7)은 트리폴리로 불리게 됐다.

이 밖에도 샌안토니오(LPD-17)급 수륙양용함에는 미국의 도시와 지방 이름이 붙여지는데 특히 2001년 9.11 공격을 받은 지명이 선호된다. 또 ‘루이스 앤 클라크’(TAKE-1)급 화물 및 탄약운반선에는 미국의 유명한 탐험가와 개척자 이름이 사용되며 이동식 착륙함에는 미 해병대의 역사적 사건의 이름과 장소가 선호된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CVN-74·10만3000t급)함. 뉴시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CVN-74·10만3000t급)함. 뉴시스

물론 이런 원칙에도 불구, 광범위한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미 해군의 차세대 항공모함(CVN-80)으로 2018년 진수될 것으로 알려진 엔터프라이즈의 경우다. 2012년 퇴역한 미 해군의 65번째 항모 ‘엔터프라이즈’를 계승한 이 선박은 레이 메이버스 해군성 장관이 없었다면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 출신의 메이버스 장관이 2012년 엔터프라이즈 항모의 퇴역식에서 미 해군이 다음에 발주할 항모가 같은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CRS 보고서는 “CVN-80 항모가 역대 미 해군 함정으로 9번째 ‘엔터프라이즈’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런 광범위한 예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버지니아급 이전 미 해군의 주력 공격잠수함인 시울프급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이 부류 최초 잠수함은 시울프(SSN-21)로 바다 생물 이름을 빌렸지만, 이후 취역한 2번함과 3번함에는 각각 코네티컷(SSN-22), 지미 카터(SSN-23)라는 계통이 전혀 다른 이름이 붙었다.

100여년 넘게 불문율로 지켜지던 해군 함정의 생전 인물 헌정은 단순 예외라기 보다는 특혜 논란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마땅한 전통이나 선박 명명 원칙이 없던 1880년대 초반까지는 조지 워싱턴, 벤 프랭클린, 존 애덤스, 제임스 메디슨 등 독립전쟁 영웅을 생전 주요 선박의 이름에 사용됐지만 1814년 ‘제퍼슨’ 전함이 건조된 뒤에는 중단됐다. 1973년까지 역사적 공과가 확실히 증명되지 않은 실존 인물을 함정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74년 미 해군이 건조한 역대 70번째 항모(CVN-70)에 당시 90세인 칼 빈슨 전 하원의원 이름이 붙여진 뒤에는 함정 명명권을 쥔 해군성 장관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생존 인물의 이름을 명명한 사례

‘칼 빈슨’항모가 등장한 뒤, 로널드 레이건(항모ㆍCVN-76)ㆍ지미 카터(공격형 잠수함)ㆍ조지 H. 부시(항모ㆍCVN-77) 등 대통령과 정치인 등 총 15명의 생존 인물 이름이 붙여졌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 발병 고백(1994년) 직후 이뤄졌고, 부시 전 대통령은 아들인 조지 W. 부시 재임시절인 2002년 곧 취역할 최신형 항모에 이름을 빌려줬다.

실제로 미국 해병대의 현역 장교인 칼 포슬링은 “무고한 해병대원을 이라크 양민 학살범으로 몰아세웠던 존 머더 전 하원의원 이름이 샌안토니오급 수륙양용 수송함에 붙여지는 등 해군 함정 명명체계가 정치에 오염되고 있다”며 “새로운 원칙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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