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기자

등록 : 2018.05.17 20:00

[논ㆍ담] “북 비핵화에 최소 5~7년 걸려… 그래도 성공 가능성은 충분”

등록 : 2018.05.17 20:00

30년 간 핵사찰 담당한 안준호 전 IAEA 선임 핵사찰관

과거 대사급 회담과 달리

북미 정상이 만나 기대감 높아

북한은 핵 관련 시설이 방대

리비아ㆍ남아공보다 험난할 것

완전한 비핵화ㆍ모든 시설 공개

김정은이 직접 약속하는게 중요

북미 모두 한국에 기술유출 우려

한국의 핵사찰 참여는 힘들어

안준호 전 IAEA 선임 핵사찰관은 “북한의 비핵화는 과거 어느 모델과 비교할 수 없는 어려운 작업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북한 핵시설은 과거 리비아, 남아공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비핵화가 차질 없이 진행되더라도 5~7년 정도는 걸릴 작업이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ㆍ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안준호(69)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선임 핵사찰관은 17일 그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내다봤다.북한이 이미 여러 차례 사찰 합의를 깨뜨린 전례가 있는데다 알려진 핵시설만 최대 100개 정도로 사찰 대상과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전 사찰관은 이번 회담이 주로 다자 간 대사급이 참여해 벌였던 과거 회담과 수준이 다른 만큼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기대감도 나타냈다. 무엇보다 충분한 검증이 가능하도록 “완전한 비핵화와 모든 시설, 정보 공개”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약속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AEA에서 30년간 핵사찰 업무을 맡았던 안 전 사찰관에게서 북한 비핵화 전망 등을 들어봤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돌이켜보면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1992년 남북이 비핵화공동선언을 했고,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나왔다. 2005년 이후에도 9ㆍ19 공동성명 등 6자 회담의 결과물이 있었다. 사반세기 넘는 북한 비핵화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런 합의들 다음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를 보고 배워야 한다. 제네바 합의로 잘 풀리는 듯했던 북핵 문제는 9ㆍ11 사건 이후 새로운 정보를 확인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자 합의가 파기됐다. 2005년 9ㆍ19 공동성명이 나온 뒤에도 2006년 10월 북한은 제1차 핵실험을 했다. 유엔 안보리 등이 압박에 나서자 몇 달 뒤 다시 핵개발을 않겠다는 듯 돌아와 IAEA 사찰을 2년 정도 받았지만 2009년 4월 사찰 요원을 추방하고 5월에 2차 핵실험을 했다. 당연히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투명성과 일관성, 향후 행동에 대한 예측성은 거래의 기본 조건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그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내달 북미 정상회담도 그런 과거를 반복할까.

“과거 회담은 국가간 합의라고 해도 기껏해야 대사급, 장관급 정도가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정상 간 대화라는 점에서 합의할 경우 신뢰 수준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을 회담이다. 양측 모두 성공을 위한 물밑 작업을 엄청나게 했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부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고, 그런 이해가 맞아떨어진다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감이 크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떤 형태일지 관심이 높다. 리비아 모델 이야기가 나오는 한편에서 남아공이나 우크라이나ㆍ카자흐스탄 모델로 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핵무기나 핵개발 포기 사례가 여럿 있지만 북한이 그 중 어느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비핵화 여건이나 이유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은 비핵화를 단번에 성공했지만 북한은 이미 서너 번 합의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것도 비교를 어렵게 한다. 남아공과 리비아는 외부 압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태에서 스스로 핵을 포기한 경우다. 남아공은 백인들이 정권 유지 수단으로 핵을 개발했는데, 결국 흑인 정권으로 교체될 상황이 되자 핵무기를 넘겨주기 싫어서 폐기한 것이다. 리비아는 파키스탄의 원심분리기를 수입하려는 계약이 초기에 발각돼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은데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보면서 포기로 기울었다. 리비아는 사실 핵물질도 별로 없었고 시설도 크지 않아 전체 작업이 3개월 만에 끝났다. 우크라이나 등은 소련이 해체되면서 자동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이 된 것인데, 자체 개발이 아니므로 경제 원조와 맞바꾸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북한의 사정은 이런 나라들과 얼마나 다른가.

“핵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폐기로 나아가는 것이니 굳이 말하자면 남아공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아공은 해체한 핵무기를 자국 원전에 이용했다. 미국은 북한 핵무기의 자국 반출을 원하는 것 같은데, 미국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IAEA를 비롯해 한국 중국 등과 합의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실험은 남아공이나 리비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하다. 재처리, 농축, 원자로 관련 실험실 등이 숱하게 있어 매우 까다로운 비핵화가 될 것이다. 핵무기는 미국이 돈을 주고 사갈 수도 있는데, 작업은 그것으로 끝난다. 중요한 것은 기존 핵시설을 가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원전 가동까지 생각한다면 완전한 시설 폐기 형태로 단기간에 완료된 리비아식 모델이 될 수 없다. 지속적인 사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 첫 작업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모습을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공개하기로 했다.

“중국의 분석에 따르면 풍계리 만탑산은 핵실험으로 내부에 사방 200m의 공간이 생겨 계속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방사능 오염물질이 계속 나온다는 관측도 있다. 더 이상 사용 불가능한 상태라는 얘기다. 게다가 북한은 핵실험을 6번 정도 했으니 더 이상 (핵실험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핵실험장 폐기를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보기는 어렵다. ‘쇼’라고 할 것까진 없겠지만 실질적 비핵화라기보다 정치적 제스처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북한 비핵화는 어떤 절차로 진행될 것으로 보나.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도출된다면 우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국제관계 정상화의 출발점이다. 그러면 IAEA에서 모든 핵 관련 정보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것이고 그것을 남김 없이 제출해야 한다. 방대한 자료일 것이고 전문가들이 그것을 분석해 사찰 계획을 세운 뒤 제출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사찰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찰팀이 북한이 밝히지 않은 의심 시설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몇 달이나 1년 정도로는 불가능하다. IAEA의 사찰 능력까지 감안하면 5~7년 정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와 ‘모든 시설ㆍ정보 공개’를 직접 약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려면 IAEA 사찰 인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IAEA 전체 사찰 인력은 200명 정도이고 이를 북한에 다 투입할 수도 없다. IAEA만으로는 무리다. 퇴직자의 지원을 받거나 미국 중국 등 각국 전문가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라크의 경우 걸프전 이후 대량살상무기를 찾기 위해 IAEA와 유엔 군축 관련 조직이 같이 움직였다. IAEA는 핵을, 유엔은 생화학무기 쪽을 살폈다. 북한도 그런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핵기술은 지식이며 무형적인 것이다. 때문에 이 부분까지 완전히 제거하기란 어렵다. 북한의 핵 관련 과학자ㆍ기술자들을 해외로 내보내자고 하지만 우선 당사자들의 인권 문제가 있고 핵 지식의 유출 우려도 있다. 그들이 모두 미국으로 간다면 그나마 다행이나 강제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북핵 사찰에 한국은 어느 정도로 참여할 수 있을까.

“북한은 핵심 기술인 재처리, 농축, 핵무기 제조 기술이 남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우려할 수 있다. 그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참관인 형태로 사찰을 지켜볼 수는 있겠지만 직접 참여는 어려울 것이다.”

부산=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북한 비핵화 문제에 인터뷰 중인 안준호 전 IAEA 선임 핵사찰관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안준호 전 IAEA 선임 핵사찰관은 누구

고려대와 한국과학원(KAIST 전신)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뒤 1977년 과학기술처에 들어가 IAEA 핵안전조치협정 관련 업무를 전담하며 핵문제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이 NPT에 가입해 조약을 발효한 것이 1975년이니 그는 국제 핵문제에 관한 한 국내에서 선구자라 할 수 있다. 1980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IAEA로 자리를 옮겨 30년간 주로 핵사찰 업무를 맡았다. 그 동안 사찰한 지역은 유럽 각국을 비롯,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 파키스탄 등이다.

2010년 퇴직 후 귀국해 서울대,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등에서 핵 비확산을 주제로 강의했다. 틈틈이 북핵 문제와 관련한 정부 자문도 맡았다. IAEA를 떠난 직후 오랜 경험을 응축해 핵확산 문제와 예방 조치의 필요성 등을 다룬 ‘핵무기와 국제정치’(열린책들 발행)를 냈다. IAEA 재직 중 북한 출신 직원들과의 교류 등 흥미로운 일화도 담은 이 책은 국내 간행물 중 핵비확산 문제를 가장 포괄적으로 다룬 저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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