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적 여유 없는 20, 30대들에게 나만의 공간 가꾸기 매력적 작업
체력적으로 쉬운 일 아니지만 해 놓고 나면 만족은 상상 이상
집 예쁘게 꾸미고 싶어도 집 주인 동의 얻지 못하면 공염불
1인 가구 전성시대다. 지난해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26.5%에 달했다. 특히 이 비율은 70대 이상을 제외하면 20대와 30대가 압도적으로 높다. 이들의 사연은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꿈꿨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독거청년의 세계에 비자발적으로 내몰렸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혼자 사는 이들에게, 집이 좁고 금전적 여유는 없는 이들에게 ‘셀프 인테리어’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이제 사람들은 만들어진 집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공간에 새긴다. 단 한 칸짜리 방이라도 마찬가지다. “네 집도 아닌데 뭐 하러 돈 들어 꾸미냐”는 지인들의 핀잔은 중요하지 않다. 돌아오는 건 분명 돈과 노력 이상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 혼자 해냈다는 일종의 성취감은 덤이다.
법적 효력을 가지는 소유만이 내 집임을 규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학업, 직장 때문에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원룸족’이 됐지만 결코 ‘내 집’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 집 마련,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잖아요”
입대 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이병철(31ㆍ남)씨는 4년 전 전역하면서 독립을 결심했다. 2년 내내 전우들과 공동 생활을 했던 터라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육군 공병 장교 출신으로 어느 정도 건축 경험이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는 셀프 인테리어 열풍이 일기 시작하던 때여서 이씨도 직접 꾸밀 목적으로 원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집 상태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최신 원룸이나 오피스텔처럼 붙박이(빌트인) 가전이 있으면 셀프 인테리어에는 방해가 되거든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조율하려면 오히려 구조가 단순한 옛날 건물이 낫죠.”
‘안 좋은 집’을 찾다 보니 오히려 마음에 드는 집이 넘쳐났다. 자연스레 집값은 떨어졌다. 그러다 이씨가 최종 낙점한 곳이 지금까지 거주 중인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서울 남현동의 10평 원룸이다. 저렴한 방을 구하면서 절약한 비용은 고스란히 인테리어를 위한 총알이 됐다.
입주 이후 치수 측정과 장판 설치, 조명 설치, 페인트칠, 가구 조립 및 배치, 창문 블라인드 설치 등 모든 작업에는 총 2주가 걸렸다. 가구, 가전처럼 이사해서도 계속 쓸 수 있는 물건을 제외하고 장판, 벽지, 선반, 조명 등 원룸 인테리어에만 투자한 비용은 75만 원 정도다. 전문 인력을 고용했을 때보다 부담이 절반밖에 들지 않은 셈이다.
문제는 역시 체력이다. 쉽게만 보였던 과정 하나하나에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벽면 전체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고 바닥 장판을 까는 데만 일주일이 소요됐어요. 창문에 철제 블라인드를 설치할 때는 혼자 들기가 너무 무거워서 후회가 들기도 했죠. 하지만 세 가지를 끝내고 나니 나머지는 할 만 하더라고요.”
그렇게 손수 인테리어를 마친 공간은 만족 이상이었다. “집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요.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낡은 집에 계속 살았다면 삶 자체를 즐기기도 어려웠겠다 생각해요. 술 한잔을 마실 때도 분위기가 안 사니까요. 공간이 삶을 좌우하더라고요.” 인테리어 당시 여러 블로그를 참고했던 이씨는 이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인테리어 팁을 전하고 있다.
아직 이사 계획은 없지만 이씨는 다른 원룸으로 옮겨가더라도 직접 인테리어를 할 생각이다. “내 집이 아닌데도 계속 인테리어를 하는 이유요? 오히려 내 집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취직은 늦고, 집은 비싸고. 요즘 2030대가 나만의 공간을 갖기엔 여건이 너무 어렵잖아요. 내 공간이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거죠. 기약이 없으니까요.”
집주인 허락이 최대 난관
대학 시절 서울 신촌 부근에서 자취를 했던 김세빈(28ㆍ남)씨는 원룸에 빌트인 제품들이 갖춰져 있어 손을 댈 수 없는 것이 늘 불만족이었다. 어린 시절 6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 아쉬움은 더 컸다. “미국은 많은 집이 주택이고 집집마다 특색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파트나 원룸이 많고 내부 구조나 가구 배치도 다들 비슷하잖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 사는 집과 똑 같을 수밖에 없으니까 졸업해서 이사하면 내 손으로 꾸며야겠다 결심했죠.”
그래서 김씨는 2년 전 ‘아무 것도 없는’ 서울 신길동의 7평 원룸을 찾아 2년 전세로 입주했다. 이후 기본적인 가구와 가전을 사들이는 데만 꽤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차피 2년 동안만 지낼 방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저렴한 제품들을 선택했고, 그 덕에 이사할 때 가져갈 것들을 제외하면 50만원도 채 들지 않았다. 결혼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모든 물건은 나중에 중고로 되팔 수 있을 정도로 예쁘고 튼튼한 것을 골랐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다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를 바꿀 때마다 집주인과 씨름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 집에서 김씨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색이 살짝 바랜 듯한 벽면이었다. 집주인은 도배를 새로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결국 김씨는 사비로 한다는 조건으로 도배를 허락 받았고 하얀색 벽지로 재단장했다. 진한 나무 색의 창틀 역시 흰색으로 페인트칠 하고 싶었지만, 동의를 받지 못해 하얀색 커튼으로 만족해야 했다. 벽에 구멍을 뚫는 것이 금지됐기 때문에 선반 설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붙이는 벽걸이를 이용해 액자들을 거는 데는 성공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싱글녀의 원룸 인테리어’를 연재한 김나경(29ㆍ여)씨도 새 원룸을 내 맘대로 꾸밀 수 있었던 데는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낸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대학시절 원룸만 네 번 옮겼을 정도로 이사가 잦았던 김씨는 매번 자신의 손으로 집을 꾸몄다. 도배와 페인트칠부터 부엌에 타일을 붙이는 것 등 잡지와 인터넷을 참고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바로 전 살던 집을 나올 때 몰딩에 페인트칠을 한 것이 문제가 돼 집주인에게 돈을 물어줘야 했다. 이 때문에 새 집에서도 처음 벽에 못을 박고 선반을 달았을 때 집주인이 방으로 찾아와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김씨의 방은 워낙 지저분한 상태여서 특별한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인테리어 재료를 검색하고 구입하는 과정에는 품이 많이 든다. 여기에 여자 혼자 실제 공사를 하는 것 또한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래서 새 집에서는 집 자체에 들이는 돈은 최대한 줄이고 가구나 소품을 잘 활용하기로 했다. 흰색을 인테리어 기본 색으로 정하고 커튼, 침구류, 러그, 조명 등을 여기에 맞췄다. 전 주에 벽 한 쪽을 페인트칠 했으면 침구를 바꾸고, 또 커튼을 교체하는 식으로 하나씩 바꿔가는 중이다.
“보통 전문 업체 불러서 하는 시공을 여자 혼자서 다 하니까 집에 와보면 다들 놀라요. 하지만 하다 보면 실력은 늘어요. 요즘은 1인 가구에 맞춘 가구도 많으니까,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바꿔가다 보면 어렵지 않아요.”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김정화 인턴기자(이화여대 중어중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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