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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평화유지군이 어린이 성범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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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평화유지군이 어린이 성범죄를…

입력
2017.04.1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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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2000건 중 300건이나

가해자 처벌은 극히 드물어

브라질 출신 유엔 평화유지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아이티 여성 자닐라 진이 지난해 AP통신과 인터뷰 당시 성폭행으로 인해 생긴 아기를 안고 있다. 그는 “가끔 내 아이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자크멜(아이티)=AP 연합뉴스
브라질 출신 유엔 평화유지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아이티 여성 자닐라 진이 지난해 AP통신과 인터뷰 당시 성폭행으로 인해 생긴 아기를 안고 있다. 그는 “가끔 내 아이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자크멜(아이티)=AP 연합뉴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의 한 폐허에서 스스로 힘겹게 삶을 꾸려가던 버려진 아이들에게 유엔 평화유지군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도움의 손길이 아니었다. 평화유지군은 과자나 돈을 쥐어 주는 대신 끔찍한 대가를 요구했다. ‘피해자 1(V01)’로 명명된 아이티 여성은 “12세부터 15세까지 3년간 스리랑카 출신 평화유지군 50여명과 성관계를 맺었다”며 “사령관이라 불린 자는 내게 75센트를 줬다. 군기지 내 트럭 안에서 잠을 잘 때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작전지역에서 저지르는 성범죄 실상이 유엔 조사를 통해 공개됐다. AP통신은 유엔의 미완성 보고서를 근거로 2004~2016년 12년간 평화유지군이 성범죄로 고발된 사례가 2,000여건에 달하며 그 중 300건 이상이 어린이 대상 범죄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이들 중 대부분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은 평화유지군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의 사법부에 대해서도 면책권을 갖는다. 군인들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출신국뿐이지만 극히 드문 일이다.

AP 취재 결과 아이티에서는 최소 스리랑카 출신 평화유지군 134명이 2004~2007년 ‘피해자 1’을 포함한 아이티 청소년 9명을 성적으로 착취했다. 이들 중 114명은 귀국 조치를 받았지만 모두 수감조차 되지 않았다. 2011년에는 우루과이 평화유지군 5명이 10대 소년을 집단 강간한 뒤 범행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에 공개했으나 우루과이 당국은 ‘단순폭행’으로 규정해 가벼운 처벌만 내렸다. 다른 아이티 여성 수십명도 생계를 위해 평화유지군의 성매매 요구에 응했다고 증언했다. 성범죄의 특성상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 파견된 평화유지군에 강간을 당한 자닐라 진은 “가해자를 다시 보는 것이 두려워 고발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범죄 논란은 이미 1990년대부터 있었다. 지난해 3월에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파견된 평화유지군이 여성과 어린이 다수를 성적으로 학대했으며 피해자 수가 100명이 넘은 사실이 드러났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유엔의 깃발 아래 저지르는 성범죄를 절대 내버려두지 않겠다”며 ‘유엔 성착취 방지ㆍ대응 개선을 위한 고위급 기획단’을 구성했다. 아툴 카레 유엔현장지원국(DFS) 사무차장은 “총장의 취지대로 성범죄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으며 회원국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AP는 “10여년 전에도 유사한 보고서와 주장이 있었지만 개혁 조치는 거의 없었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평화유지군의 성범죄 증거 조사는 유엔에 들어가는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평화유지군의 모든 작전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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