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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선주자를 통해 본 미국 사회의 변화

입력
2015.10.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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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음 대선은 내년 11월 초인데 벌써부터 열기가 뜨겁다. 그도 그럴 것이 현역 대통령이 이미 재선을 해 바뀔 수밖에 없고, 결전을 앞두고 양당 모두 내년 1월초부터인 예비선거를 통해 대통령후보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속이 타겠지만 관찰자로서는 이런 기회가 거의 8년에 한 번씩 오니 흥미롭다. 게다가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의 뻔한 싸움일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혼전이 벌어지면서 흥미와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우선, 이제는 아주 구태의연해져서 오히려 역설적이라 할 ‘변화’에 대한 미국 사회의 갈망이다. 이것은 약 8년 전 오바마가 미국 사회와 역사를 크게 뒤흔들면서 흑인 대통령을 꿈꾸며 외쳤던 ‘변화’와는 사뭇 다르다. 1787년 만들어져 아직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미국 헌법은 인구수를 셀 때 흑인을 백인의 5분의 3으로 계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200년도 훨씬 뒤에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시도했고 마침내 이에 성공한 것은 천지개벽에 비할 변화라고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 사회에 흐르는 변화란 ‘왕조 건설’에 대한 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만약 힐러리가 당선되면 클린턴 가문의 부부가 돌아가며 대통령을 하는 것이고 만약 젭이 당선되면 부시 가문의 아버지, 아들, 그리고 또 다른 아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을 하는 셈이 된다. 과거 미국에서 부자간(두 번째 대통령인 존 애덤스와 여섯 번째 대통령인 존 퀸시 애덤스)에 대통령을 했고 사촌간(1901년에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그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도 대통령을 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19세기나 20세기도 아니라 21세기에, 그것도 왕조 국가들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미국 시민 스스로 왕조 국가 만드는데 방조하는 것을 주저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자신들이 스스로 왕조 국가를 건설하면서 3대가 권력을 세습한 북한 등을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

이번 미국 대선을 관찰하면서 다음으로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 사회의 양극화이다. 지금 민주당에서 힐러리를 제친 후보는 다름 아닌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이다. 그는 소득의 재분배, 인종차별 철폐, 국가건강보험의 도입, 세제 개혁을 주장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가 자유무역정책을 반대하고 대형 금융기관의 해체를 주장하며 상위 1%가 미국인 수입의 99%를 챙기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사회주의자라는 평이 썩 잘 어울린다. 민주당에서도 이념적으로 훨씬 더 왼쪽에 있는 셈이다.

또한 지금 공화당에서 예상을 깨고 앞서나가는 후보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이다. 그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범죄자와 성폭행범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의 유입을 막기 위하여 미국 국경에 장벽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는 물론 이슬람계까지 혐오하는 연설을 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실내장식이 더러 금으로 칠해진 약 1,000억원짜리 자가용 보잉 757 비행기로 가는 미국 전역 곳곳에서 그의 연설을 기다리는 청중이 구름같이 모이는 광경은 과거 대선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의 보수 유권자들은 아마 이를 보고 미국의 부와 힘과 영광을 느끼는 모양이다. 민주ㆍ공화 양당의 현재 선두주자는 왼쪽으로는 사회주의자이고 그 반대쪽으로는 부동산 재벌이다. 한마디로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말이다. 1년 뒤 본선에 과연 누가 진출해서 결국 누가 당선될지 지금 시점에서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차기 미국 대통령은 이런 양극화 해결이라는 과제를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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