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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개정안, 저임노동자 보호에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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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개정안, 저임노동자 보호에 ‘구멍’

입력
2018.05.25 19: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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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받는 상여금,복리후생 수당

일부분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총액 같은 저임금 노동자라도

수당 많은 사람은 인상 효과 줄어

사업주 상여금 쪼개기도 길 열어줘

노동계 “총파업ㆍ위원회 사퇴” 반발

재계도 “TF권고안보다 후퇴” 불만

민주노총 최저임금 개악저지민주노총 지도부가 지난 24일 오전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개악저지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중단하고 논의를 최저임금위원회에 넘길 것을 촉구했다. 배우한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 개악저지민주노총 지도부가 지난 24일 오전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개악저지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중단하고 논의를 최저임금위원회에 넘길 것을 촉구했다. 배우한 기자

저임금 노동자들의 지갑 두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가 25일 새벽 일단락됐다. 내년부터 노동자의 최저임금에 상여금과 교통비ㆍ숙식비 등 복리후생 수당을 부분적으로 포함시키기로 한 것.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하고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는 등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날 오전 2시 30분쯤 노동자가 매월 받는 상여금이 월 최저임금의 25%를 넘는 경우 그 초과분과 복리후생 수당 중 최저임금의 7%를 넘는 부분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내년 최저임금이 15% 인상된다고 가정할 때 월 45만원 가량을 넘는 상여금과 12만원 가량을 초과하는 복리후생 수당이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의원들은 내년 15% 인상 가정 시 연봉이 2,867만원인 저임금 노동자는 산입범위가 확대되지 않도록 보호했다고 밝혔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가 벌써부터 제시되는 등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 원칙마저 훼손했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저임금 노동자 보호” 정말 그럴까

개정안에 따르면 매달 기본급으로 157만원(2018년 최저임금)과 상여금 10만원, 급식비ㆍ교통비 10만원을 받고 있는 A씨는 내년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그만큼 월급이 늘어난다.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실현 공약에 맞춰 15%를 인상한다고 가정할 때 기본급 181만원에 상여금과 복리수당 20만원을 더해 201만원을 받는 식이다.

반면 매월 기본급 157만원에 상여금 80만원과 복리수당 20만원을 받는 B씨의 경우 내년에 증가하는 소득은 전혀 없다.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상여금 35만원과 최저임금의 7%를 초과하는 8만원이 최저임금에 포함돼, 매월 2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15% 인상되더라도 이미 181만원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있어 사용자가 월급을 올려주지 않아도 된다.

B씨의 경우 총 소득이 연 3,084만원이므로 여야가 말한 ‘보호 대상 저임금 노동자’는 아니다. 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인데도 최저임금 상승분을 임금에 모두 반영할 수 없는 사례가 파악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산하 전국교육공무직 본부에 따르면 학교 행정직 C씨의 내년 예상 기본급은 월 170만원 가량이며 월 13만원의 급식비, 6만원의 교통비를 받는다. 연간 총 상여금 60만원과 명절 휴가비 100만원 등을 모두 더하면 총 임금은 2,270만원 가량인 저임금 노동자다. 하지만 내년 최저임금이 15% 상승하더라도 C씨는 매월 최저임금 7% 초과치에 해당하는 복리후생비 7만원만큼 임금 상승분이 줄어든다. 배동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민간도 아닌 학교가 최저임금 상승분의 절반도 안 되는 인상액만 주고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여야는 점차 산입 비중을 늘려 2024년부터는 상여금과 복리수당 전체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자칫 재계의 반발 등을 이유로 인상률이 꺾이기라도 하면 2024년 이후에는 상당수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정체하는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용자 마음대로 ‘상여금 쪼개기’도 가능

근로기준법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특례를 허용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란 사업주가 상여금 지급 시기 등이 명시된 취업규칙을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만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환노위는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만 산입할 경우 분기ㆍ반기별로 상여금을 주는 상당수 사업장이 산입범위 확대의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는 재계의 주장을 반영해 과반수 노동자의 합의 대신 의견 청취만 하면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예외를 두기로 했다. 사업주 마음대로 상여금을 나눠 최저임금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불이익 여부는 약자인 근로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사용자와 합의를 통해 권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조치는 근로기준법 취지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동계는 강경대응에 나섰다. 이날 오후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개정안을 국회 본회에 상정할 경우 28일 월요일 오후 3시 총파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최저임금위 소속 위원 4명 전원이 사퇴한다고 밝혔다.

재계도 반발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해 온 재계 역시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안에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과된 개정안이 최저임금 제도개선 TF 권고안보다 다소 후퇴해 아쉽다”고 평가했다. 권고안은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과 일부 복리후생수당을 최저임금에 일괄 산입하도록 했으나, 이번엔 상여금의 25%, 수당의 7% 초과분만 산입하기로 ‘후퇴’했다는 의미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노동자 의견청취만으로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는 특례가 마련되긴 했지만 정작 노조가 있는 대다수 기업은 취업규칙보다 상위 개념인 단체협약으로 상여금을 규정하고 있다”며 “결국 노조 동의 없이는 상여금 지급 주기를 매월로 바꾸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소기업중앙회는 “어렵게 통과된 개정 합의를 존중한다”며 “영세 중소기업계가 줄곧 요청해 온 숙식비 등을 최저임금에 점차 확대 산입해 기업의 고용비용을 합리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며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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