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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식물인간·개·로봇… 누가 더 ‘마음’을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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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식물인간·개·로봇… 누가 더 ‘마음’을 갖고 있을까

입력
2017.10.19 13:5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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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구한 로봇에겐 보상을 줘야 할까, 연쇄살인을 한 개는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대니얼 웨그너는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 외에 우리가 놓친 또 하나의 축 ‘행위’와 ‘경험’의 이분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을 구한 로봇에겐 보상을 줘야 할까, 연쇄살인을 한 개는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대니얼 웨그너는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 외에 우리가 놓친 또 하나의 축 ‘행위’와 ‘경험’의 이분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게티이미지뱅크

美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와 제자가 연구한 ‘마음의 정체’

“인간만 마음을 갖고 있을까 마음은 지각할 때 존재한다”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대니얼 웨그너, 커트 그레이 지음ㆍ최호영 옮김

추수밭 발행ㆍ448쪽ㆍ1만8,500원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무기력한 삶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탄에 빠진 이, 투병 중인 배우자, 돌봄이 필요한 아기, 말 못하는 동물과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책임감과 자존감이 높고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럼 악행은 어떨까. 남을 괴롭히고 해치는 일도 삶에 활력을 불어 넣을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의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 따르면 그렇다. ‘흰곰 효과’(흰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 순간 흰곰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현상)로 유명한 웨그너는 자신의 연구를 망라하는 책을 구상하던 중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013년 작고한 웨그너의 뒤를 이어 제자 커트 그레이가 완성한 이 책은 ‘마음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 노학자가 마음에 집중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 혹은 인간에 준하는 존재로 취급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분류된 자, 즉 마음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들의 모임을 저자는 ‘마인드 클럽’이라고 부른다.

“마인드 클럽의 회원 자격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분명한 특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는 존재에게는 존중, 책임, 도덕적 지위가 인정되는 반면에, 마음이 없는 존재는 무시와 파괴의 대상 혹은 사고 팔 수 있는 소유물로 전락된다.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보면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노예가 다른 종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자의 관심이 ‘어떻게 하면 마음을 갖출 수 있는가’ 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에 쏠려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저자는 ‘마음은 지각될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란 확신 위에서 일반인 2,49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사용된 ‘마음 후보자’들은 회계사, 5개월 된 아기, 식물인간, 야생 침팬지, 고인, 개, 로봇, 태아, 신 등이다. 이들 중 누가 얼마나 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응답자들이 어떤 판단을 내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응답자들의 마음 판정 기준은 상이했지만 연구진은 한 가지 공통점을 끌어냈다. 사람들은 ‘경험’과 ‘행위’로 마음의 함량을 판단한다는 것. 경험은 ‘감각하고 느끼는 것’, 즉 입력이고, 행위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즉 출력에 속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전지전능한 신도 마인드 클럽의 회원 자격심사에서 아슬아슬하다. 신은 배고픔이나 수치를 느끼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므로 경험 능력에서 ‘열등’하기 때문이다. 툭하면 신이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그 증거로, 신은 사실 그다지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 도덕성이라는 또 하나의 축을 들고 온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 ‘스파이더맨’의 대사처럼, 마음을 가진 자들과 도덕성은 뗄 수 없는 문제다. 저자는 여기서 작용하는 묘한 ‘불공평’을 포착한다. 마음의 함량이 비슷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도덕적 권리를 더 많이 누리고 어떤 이들은 도덕적 책임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아기와 로봇이 절벽에 매달렸을 때 구출되는 것은 아기지만, 둘 다 총기사고를 일으켰을 때 폐기 처분되는 것은 로봇이다. 웨그너는 마음 중에서도 ‘행위’ 즉 출력이 훌륭한 존재들은 도덕적으로 더 많은 책임을 요구 받으며, ‘경험’ 곧 입력이 특출 난 존재들은 도덕적으로 더 많은 배려를 받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노력 이상으로 행위자와 경험자를 구분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악당은 피해자가 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영웅도 피해자가 될 수 없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악행과 선행을 하도록 유도된 집단 모두 2.2㎏의 추를 드는 실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오래 버텼다. 악행이 활력이 된 것이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행위능력이 높은 이들은 수동자(행위를 받는 자)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이 시선이 행위자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인드 클럽의 최상층부엔 누가 있을까. 모든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 모든 도덕적 권리를 누리는 이들. 우리 사회 마인드 클럽엔 어떤 이들이 있을까.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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