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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박정희는 일제 군국주의가 아닌 조선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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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박정희는 일제 군국주의가 아닌 조선의 후예?

입력
2018.07.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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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를 ‘일제 군국주의의 화신’이라 여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조선적인 그 무엇’을 극도로 혐오했다. 알고 보니 박 전 대통령이야 말로 조선스러웠다면? 유진 박이 던진 화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를 ‘일제 군국주의의 화신’이라 여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조선적인 그 무엇’을 극도로 혐오했다. 알고 보니 박 전 대통령이야 말로 조선스러웠다면? 유진 박이 던진 화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군, 무기, 작전을 다룬 ‘밀덕’(밀리터리 덕후) 책이 아니다. 그보다 존 던컨의 ‘조선 왕조의 기원’(너머북스)에 덧대어 읽을 책이다. 던컨은 고려말~조선초 중앙관료 5,000명의 명단을 추적,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교체가 이뤄지면서 귀족이 물러가고 신진사대부가 등장했다는 통설을 부정했다. 왕조는 바뀌어도 지배층은 그대로였다는 얘기다.

‘조선 무인의 역사’ 또한 그런 책이다. 한국계 미국인 유진 박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는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 중 20%에 해당하는 3만2,327명 정보를 추적했다.

요약하자며 이렇다. 조선의 양반은 특권 유지, 확장에 최선을 다했다. 그 수단이 과거제였다. 과거, 특히 문과는 10년 이상 긴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기에 이를 감당해낼 인적, 물적 토대가 없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동시에 또 다른 노림수가 있었으니 “지방에서 실질적으로 세습적 지위를 누렸던 향리 같은 기득권층을 권력구조에서 제외함으로써 고려 귀족보다 더 엄격하게 권력을 독점”하기 위함이었다. 고려 귀족이 중앙권력만 먹었다면, 조선 양반은 과거 시험을 내세워 지방권력까지 독식했다는 얘기다.

현대에 치러지고 있는 과거시험 재연행사. 과거시험은 핏줄 아닌 능력에 따른 관료임용이란 주장이 많다. 하지만 실은 이게 중앙 귀족들의 권력 독점과 확대를 위한 묘수였다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대에 치러지고 있는 과거시험 재연행사. 과거시험은 핏줄 아닌 능력에 따른 관료임용이란 주장이 많다. 하지만 실은 이게 중앙 귀족들의 권력 독점과 확대를 위한 묘수였다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독식하면 배탈난다. 그래서 만든 우회로가 무과다. 문과를 통과 못한 양반에게 무과는 양반 지위 획득, 유지 통로다. 똘똘하거나 공을 세운, 반항 끼 좀 있는 일반 백성도 포섭할 수 있다. 무과가 조선 후기 들어 한 번에 1만명씩 뽑는 바람에 ‘만과(萬科)’라 불리기까지 했던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유진 박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 푸른역사 제공
유진 박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 푸른역사 제공

조선은 지독한 양반 독점 사회였고, 이 독점을 방어하기 위한 완충장치가 무과였으며, 조선인들도 무과 언저리에 이름 하나 올리는 걸로 만족했으며, 그래서 조선은 19세기까지 양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사회라는 얘기다. 일제가 유포한 ‘정체성론’을 깨부순다는 명분으로 왕조 교체와 시대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하려는 국내 학계를 비판하는 연구다. 세계사적으로 동시대에 유례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관료를 임용한 위대한 과거제도라는 자기만족적 설명도 부정하는 연구다. 던컨과 마찬가지로 유진 박 역시 조선을 아예 ‘귀족사회’라 못 박고 서술을 이어가는 이유다.

조선 무인의 역사, 1600~1894년

유진 박 지음ㆍ유현재 옮김

푸른역사 발행ㆍ292쪽ㆍ2만원

논쟁은 학자들에게 맡겨두자. 다만 ‘수저계급론’이 나오는 등 한국 사회의 정체가 도드라지는 요즘 추세에서 어느 쪽 해석이 더 설득력 있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에드워드. H. 카의 명제는 역사학계의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우울한 예언’일 수도 있다.

참, 마지막으로 하나. 이런 조선 무과 제도의 정점에 누가 있었을까. 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는다. 사범학교 교사 직을 내던지고 만주군관학교를 택한 건 그 증거다. 박 전 대통령을 비아냥대는 주장과 달리 그는 일제 군국주의의 후예가 아니라 조선의 후예였다. 조선을 경멸한 박정희의 아이러니다. 그래서 역사는 재미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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