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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보이콧 아메리카?

입력
2017.04.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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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재앙의 모습이 분명해지고 있다.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신경과 그로부터 비롯된 일련의 정책행보가 초래할 매우 위중한 결과에 관한 얘기다. 그 결과의 심각성은 그의 반(反)이민행정명령, 극단적 보수인사 대법관 지명, 오바마케어 폐기 등에 따른 해악이 오히려 가벼워 보일 정도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시행된 석탄화력발전소 동결 및 폐지를 담은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전격 폐지했다. 미국 대통령의 결정으로서 인류에게 그보다 더 큰 해악을 초래할 만한 일로는 핵전쟁을 일으키는 것밖에 없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CPP 폐지 행정명령은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보다 엄격한 에너지효율 기준을 폐지하겠다는 선언과 기후과학에 대한 지출을 삭감하겠다는 발표에 이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련의 정책행보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6% 줄이겠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협약은 산업화 이전 시기에 비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 미만으로 묶어둘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다. 사실 2도조차도 호주와 같은 저위도 국가 주민과 생물들에겐 너무 높은 상승폭이다. 대부분 저위도 국가들은 더 높아질 경우 일부 해양 생물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 제한폭 1.5도로 하자고 호소했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기온이 과거보다 2도 이상 올라갈 경우, 지구온난화의 악순환, 곧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촉발해 더 이상의 기온 상승으로 이어지며 지구의 더 많은 지역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일례로 2℃ 이상 상승은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 동결된 이산화탄소를 융해시켜 대기 중에 더 많은 탄소를 방출하고, 그게 또 다시 평균기온을 밀어 올려 시베리아 동토 이산화탄소의 대량 융해를 촉진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는 식이다. 온난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 태양열이 반사되지 않고 수중에 흡수돼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양상과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기간 중에 기후변화 문제를 중국이 미국의 산업을 파괴하려고 제기한 ‘거짓말’이라고 규정했다. 스콧 프루이트 미 환경보호청(EPA) 청장은 지난달 청장에 지명된 후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아직 관련 사실을 모르며, 따라서 더 검토하고 분석해봐야 한다”며 딴청을 부렸다.

미국기상학회는 프루이트 청장에게 즉각 “이산화탄소 및 다른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며 “여타 과학 단체에서 다른 결론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취지의 서한을 발송했다.

미국기상학회의 주장은 맞다. 그리고 설사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프루이트 청장의 입장을 수용한다 해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행보는 여전히 신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주범이든 아니든, 지구의 미래와 수십 억 인류의 삶이 달린 문제를 고작 미국민의 에너지 비용을 줄이고, 수천 개에 불과한 석탄산업 일자리 보장을 위해 뒤흔드는 건 옳지 않다. 석탄산업 일자리 축소의 주원인은 이산화탄소 규제보다 천연가스와의 경쟁이나 공장자동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동안 내세워왔던 ‘미국 우선주의’에 사로잡혀 기후변화 정책을 과격하다고 여기지 않을지 모른다. 당장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미 국민들이 아닌 저위도 국가 국민들이며,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로 심각한 농작물 피해 등을 입게 될 농민, 빈민들일 것이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해발 1m 내외에 거주하는 도서국가 국민들부터 거주지를 잃게 되고, 방글라데시나 동남아시아, 이집트 등의 저지대 농민 수천 만 명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파리기후협약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행하지 않은 나라에 대한 제재 시스템이 없다. 그저 목표 불이행국을 거명하고 부끄러움을 주자는 정도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훨씬 이전의 여성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미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확인됐다. 대체 트럼프 대통령보다 인류의 미래를 더 많은 위험에 빠뜨릴 만한 다른 나라 대통령이나 개인이 있을 수 있을까.

미국이 만약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일반적 해악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생산을 위해 가장 싼 연료를 쓰도록 한다면, 그건 파리기후협약을 성실히 이행하려는 다른 나라나 기업들에게 불공정한 특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세계무역기구(WTO)는 마땅히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미국 상품에 대해 무역장벽을 가동하는 걸 허용해야 한다. 만약 WTO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전 세계의 소비자들이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여서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폭주를 저지해야 할 것이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겸 호주 멜버른대 공공정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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