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서강 기자

김주영 기자

등록 : 2017.11.16 04:40

벌레 먹은 낙엽이 아름답다

[View&]상처 난 낙엽으로 가을을 보다

등록 : 2017.11.16 04:40

[외계인] 벌레 먹은 낙엽을 들고 가을 하늘을 본다. 식성 좋은 벌레들이 아무렇게나 뚫어놓은 구멍이 갖가지 모양으로 다가 온다. 귀여운 아기 오리부터 달팽이와 하트, 종, 외계인의 얼굴까지, 가을의 흔적을 찬찬히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오리] 벚나무 낙엽의 벌레 구멍이 귀여운 아기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강아지] 목줄을 맵시다.

[하트]하트 모양을 뚫린 벚나무 낙엽의 벌레 구멍.

[물고기] 두 마리.

[금붕어] 금붕어 모양을 한 낙엽.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의 시 ‘벌레 먹은 나뭇잎’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잎사귀에 난 크고 작은 상처를 보며 희생적 삶의 고귀함을 떠올렸다.  나뭇잎이 먹여 살린 벌레들은 어느새 다가온 겨울의 문턱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찬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만 저마다 ‘별처럼 아름다운’ 상처를 안고 뒹굴 뿐.

거리마다 거무튀튀하게 말라 일그러진 낙엽은 그렇게 만추(晩秋)의 풍경을 완성해 가고 있다.

14일 서울 남산공원 산책로에서 낙엽을 주워 찬찬히 바라보았다. 벌레가 갉아먹어 구멍 뚫린 잎사귀가 영화에서 본 듯한 외계인의 얼굴로 눈을 마주친다. 그 눈을 통해 하늘을 보고 거리를 보고 아직 지지 않은 은행잎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뚫린 구멍이 문득 오리처럼 보이더니 강아지가 되어 마음 속에 들어온다. 벌레 먹은 낙엽의 새로운 발견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뼈대만 앙상한 플라타너스 낙엽이 애처롭다. 벌레에게 제 속살을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이라곤 거미줄처럼 얇고 가는 잎맥뿐. 그러나 시인은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낙엽의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고 했다. 낙엽을 바라보며 고귀한 희생적 삶을 기억하라. 거리엔 ‘별처럼 아름다운’ 흔적을 안고 뒹구는 낙엽이 얼마나 많은가.

[공룡] 공룡처럼 보이지 않나요?

[무제]거미줄처럼 얇은 잎맥만 남은 낙엽.

[애벌레] 애벌레가 잎사귀에 자화상을 남겼다.

벌레는 잎사귀의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 속살만을 골라서 먹어 치웠다. 식성 좋은 녀석들이 훑고 지난 자리엔 육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얇고 가는 잎맥만 그물처럼 남았다. 이번엔 마이크로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 방향으로 길쭉하게 또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흠집의 확대된 이미지가 마치 뒷골목 담벼락에 몰래 그린 그래피티 같다. 자연이 던진 메시지를 읽고 싶어 한참을 더 들여다본다.

찬바람이 휙 불 때마다 길가에 쌓인 낙엽이 흩어진다. 아쉬움에 또 한 잎 주워 손바닥에 올려 놓고 눈을 맞췄다. 이젠 귀족의 손처럼 매끈한 잎사귀보다 상처투성이 낙엽이 왠지 더 가을 같다. 나뭇잎의 아름다운 삶, 벌레 먹은 사연을 떠올리며, 미소 한 번 지어 이 가을을 보낸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무제]그래피티나 크로키 작품처럼 보이는 낙엽의 상처.

[무제]벌레는 잎사귀에 무슨 메시지를 남겼을까?

[무제]낙엽에 난 상처가 사물의 움직임을 간략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한 크로키 작품처럼 보인다.

[무제] 가느다란 잎맥만 남은 벌레의 흔적.

[상어] 상처 난 낙엽을 바라보며 상상을 나래를 편다.

[달팽이] 귀엽지 않나요?

[종]찌그러진 종처럼 보이는 벌레 구멍.

[외계인]약간 삐딱한 표정의 외계인이 연상되는 상처 난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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