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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선율에 힙합… ‘어쿠스틱 K팝’ 뜬다

입력
2016.05.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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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청음회에 1만명 운집

남매 듀오의 풋풋함ㆍ서정성에 호평

10cmㆍ정은지도 활약 음원사이트 석권

포크 음악에 랩과 디스문화 활용해 변주

소소한 일상 담은 가사도 큰 공감 얻어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의 멤버인 이찬혁(왼쪽)은 통기타를 기반으로 한 음악에 랩을 한다. 어쿠스틱 음악에 힙합적 수용도 마다하지 않는 '어쿠스틱 K팝 세대'의 선두주자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의 멤버인 이찬혁(왼쪽)은 통기타를 기반으로 한 음악에 랩을 한다. 어쿠스틱 음악에 힙합적 수용도 마다하지 않는 '어쿠스틱 K팝 세대'의 선두주자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초록창가 사이 꽉 채워진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구름 위 둥실둥실~” 지난 5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구 뚝섬로 서울숲.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이 신곡 ‘초록창가’를 초록이 우거진 야외 무대에서 노래하며 봄날의 낭만을 선사했다. 홍안의 청년(이찬혁·20)과 소녀(이수현·17)가 어린이날에 꾸린 동심의 무대다. 청소년의 꿈을 응원하는 노랫말에 잔디밭에 앉아 남매의 노래를 듣던 어린이들도 자신들의 얘기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의 아득한 분위기에서 기타를 칠까요, 아님 여러분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기타를 내려 놓고 MR(반주음악)을 틀까요?” 올해 스무 살이 된 이찬혁은 결국 통기타를 들고 낭만을 택했다. 4일 낸 새 앨범 ‘사춘기 상’(思春記 上)의 수록곡 ‘리 바이’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를 비롯해 히트곡 ‘200%’를 기타로 연주하며 동생 이수현의 노래와 조화를 이뤘다.

악동뮤지션이 2년 만에 낸 정규 앨범 청음회로 꾸려진 이 자리에는 1만 여 명의 시민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렸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숲을 찾은 40대 이상 부모들이 적잖아 눈길을 끌었다. ‘돌덩이로 태어났다면 이리저리 치이고 굴러 떼굴떼굴 떨어지고 말 텐데’(신곡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게’)처럼 아이 같은 시각으로 노래하는 남매를 중년들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악동뮤지션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기반으로 한 풋풋함과 따뜻함에 관심을 보였다. 1980년대 활동해 인기를 끈 마음과 마음 이후 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혼성 듀오의 음악적 서정성을 잇기는 악동뮤지션이 유일하다. 남편과 함께 아이 셋을 데리고 악동뮤지션의 음악을 듣기 위해 서울숲을 찾았다는 김소영(48)씨는 “요즘 유행하는 음악들은 빠른 템포 속에 가사가 하나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데, 악동뮤지션의 노랫말은 순수하고 따뜻하다”며 “옛 포크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지만, 아이들(악동뮤지션)이 재치 있는 감각으로 포크 음악의 낭만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 듣기 좋다”고 말했다.

폭 넓은 세대의 사랑을 받은 악동뮤지션은 신곡 ‘리 바이’로 멜론·올레뮤직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4~5일 이틀 연속으로 일간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케이블채널 Mnet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 출신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지난 4일 악동뮤지션과 동시에 신곡을 낸 아이오아이(I.O.I)도 남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태후’ O.S.T와 IOI 제친 10cm와 악동뮤지션

악동뮤지션처럼 통기타를 기반으로 발랄한 음악을 선보이는 ‘어쿠스틱 K팝’이 요즘 가요계를 이끌고 있다.

남성 듀오 10cm의 최근 활약은 ‘어쿠스틱 K팝’의 위세를 잘 보여준다. 지난 4월 낸 신곡 ‘봄이 좋냐??’로 거미가 부른 KBS2 ‘태양의 후예’ O.S.T 등을 제치고 멜론·올레·엠넷뮤직 등 8대 음원사이트 월간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춤추는 댄스 음악을 하는 아이돌도 ‘어쿠스틱 K팝’ 바람에 뛰어 들었다. 걸그룹 에이핑크 멤버인 정은지도 소박한 통기타 연주에 하모니카 음색이 추억을 자극하는 곡 ‘하늘바라기’로 솔로 활동에 나서 Mnet ‘엠카운트다운’과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차지했다. 홍대 인디 출신 스타부터 대형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어쿠스틱 K팝’으로 인기를 누리며 세를 넓혀가는 모양새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음악적 뿌리로 둔 남성듀오 10cm는 ‘봄이 좋냐??’에서 힙합의 일명 ‘디스 문화’를 끌어들였다. 메직스트로베리 제공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음악적 뿌리로 둔 남성듀오 10cm는 ‘봄이 좋냐??’에서 힙합의 일명 ‘디스 문화’를 끌어들였다. 메직스트로베리 제공

랩하고 ‘디스’하는 ‘어쿠스틱 K팝’

‘어쿠스틱 K팝’은 통기타를 음악적 기반으로 하지만 한대수와 김민기로 시작해 고 김광석으로 이어져 온 포크 음악과는 결이 매우 다르다. 앞선 포크 음악 세대들이 소박한 통기타 연주에 사회적 저항과 삶에 대한 관조를 진지하게 읊조렸다면, ‘어쿠스틱 K팝’ 세대들은 소소한 일상을 격의 없이 노래한다.

흑인 음악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곡에 녹이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악동뮤지션은 특히 랩의 활용도가 높다. 2012년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에서 통기타 연주에 랩을 섞어 신선함을 준 이찬혁은 새 앨범에서도 기타를 치며 랩을 한다. 그간 통기타를 들고 노래했던 국내 가수들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힙합이나 댄스 음악에 익숙한 10~30세대를 좀 더 친숙하게 어쿠스틱 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가장 큰 요인이다. 안테나뮤직의 정동인 대표는 “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라고 노래하는 10cm의 ‘봄이 좋냐??’도 힙합의 디스(상대방을 공격하는 힙합의 문화)문화를 품은 어쿠스틱 K팝”이라며 “이전 포크 음악세대에선 찾아 볼 수 없는, 흑인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들이 선보이는 어쿠스틱 음악의 새로운 변종”이라고 해석했다.

‘어쿠스틱 K팝’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의 힘이다. 악동뮤지션 청음회에서 만난 숭실대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이은송(22) 양은 “악동뮤지션과 10cm는 정말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만한 사소한 얘기를 폼 잡지 않고 풀어 좋다”고 말했다. 통기타 연주가 줄 수 있는 감정적인 따뜻함에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누듯 격의 없는 방식으로 생활밀착형 가사를 써 10~30세대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외계어’와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감탄사만 남발하는 댄스 아이돌그룹 음악에 대한 피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트와이스의 신곡을 들으면 그룹 내 외국인 멤버가 많아 가사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데 여러 아이돌 음악을 들으면 독해가 필요할 정도로 가사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포크 음악과 이야기를 푸는 방식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힘에 집중하는 ‘어쿠스틱 K팝’이 다양한 세대들에 각광받는 이유”라고도 분석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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