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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한다고 했다가… 문재인 정부 대북 지원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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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한다고 했다가… 문재인 정부 대북 지원 딜레마

입력
2017.10.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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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와 정치 무관” 강조하고선

“남북 상황 감안해 시기 확정” 사족

北 핵 폭주로 최악 상태 여론 눈치

“남북관계 회복” 전향적 선언 무색

“상향식 열린 정책” 표방 자승자박

전문가 “힘들 때 도우면 北이 기억”

창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북한 삼천 유치원 아이들. 2015년 10월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가 찍은 사진이다. 올 3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보고서 인용 보도에 따르면 북한 주민 10명 중 7명이 영양 부족 상태다. WFP 홈페이지 화면 캡처
창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북한 삼천 유치원 아이들. 2015년 10월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가 찍은 사진이다. 올 3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보고서 인용 보도에 따르면 북한 주민 10명 중 7명이 영양 부족 상태다. WFP 홈페이지 화면 캡처

문재인 정부가 진퇴양난에 처했다. 형해화한 남북 관계를 되살려보겠다는 전향적 선언이 무색하게 명분 뚜렷한 대북 지원까지 망설이고 있다. 인도주의마저 망각하게 만든 북한 정권의 핵 폭주가 핑계지만 독주하지 않겠다며 스스로 표방한 소통으로 자승자박한 형국이다.

지난달 21일 정부가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과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의 인도적 대북 사업에 800만달러(약 90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정부 기본 입장에 따라서다. 당시 회의를 주재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정권 제재와 주민 지원은 분리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공유 원칙”이라고 환기하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결정 취지가 “원칙의 재확립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결정에는 단서가 붙었다.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 관계 상황 등 전반적 여건을 고려해 확정한다”며 번복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당국은 “기술적 문제”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당장 ‘남북 관계 상황이 정치적 상황이 아니면 뭐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와 인도 지원을 나눈다면서 남북 관계는 살핀다는 정부 논리가 자가당착이란 비판이었다.

이런 주저는 문재인 정부의 일관된 태도다. 대북 인도 지원 방침이 결정되기 하루 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미국 뉴욕에서 “현재 남북 관계와 북한 핵ㆍ미사일 도발 등 제반 상황을 감안해 시기 등 관련 사항을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앤서니 레이크 유니세프 총재를 만나서다. 유엔 재직 시절부터 강 장관이 피력해 온 분리 소신을, 정부 기조가 바꾼 셈이다.

제재ㆍ대화 병행 방침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동참하는 한 마주하지 않겠다며 우리 정부에 눈길도 주지 않는 북한을 상대로 대화의 문을 열어놨으니 들어오라는 이야기만 줄곧 반복하는 정부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많다. ‘통미봉남’(通美封南ㆍ남한은 무시하고 미국과 담판)이 엄연한데도 공허한 소리만 한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한반도 위기 국면 전환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문 정부가 이처럼 어정쩡한 자세인 것은 정책 잣대 맨 앞에 여론을 두는 이른바 ‘소통 정부’여서다. 실제 엘리트 주도 하향식 정책을 지양하겠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누차 강조했다. 조명균 장관도 9월 초 기자간담회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대북 정책을 보완해 갈 것”이라고 했다.

태생이 ‘촛불 민심’이라고 공공연히 천명해 온 현 정부가 ‘편 가르기’와 독선으로 일을 그르친 전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 자경(自警)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국민 정서가 수용하지 못한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명분은, 정부가 여론을 얼마나 신봉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다만 소신껏 추진해야 할 일도 있다는 지적이다. 인도 지원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나름대로 진보 내지는 중도개혁 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보수 진영도 자극하지 않을 수 있는 돌파구 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그 결과 떠올린 방안이 국제기구를 활용한 우회 지원이다. 90억원 유니세프ㆍWFP 공여 방침을 확정한 정부는 내달 초 국제적십자사연맹 회의가 열릴 덴마크에도 대한적십자사 대표를 보내 대북 지원 가능성을 타진한다.

대국민 설득도 꾸준하다. 지난달 국제기구 공여 결정 회의를 앞두고 통일부는 쟁점 설명 자료 배포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인도적 대북 지원 당위성 등을 설명했다. 제재를 결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우려를 표시했을 만큼 북한 취약 계층의 상황이 심각하지만 국제기구의 자금이 부족하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황인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변화는 자생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유도하는 건 남북 교류”라고 역설했다.

전문가들도 인도적 대북 지원은 머뭇거릴 이유가 별로 없다고 조언한다. 국내외 대북 여론이 좋지 않긴 해도 정권 성향을 막론한 원칙에 부합하는 데다 시급성이라는 명분도 멀쩡하고, 전략적으로도 외면보다 낫다는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4일 “동포를 다른 나라들처럼 간단히 적대시할 순 없고 향후 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지원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수요도 있다. 지난달 24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유엔 총회 참석차 방미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니세프 등 유엔 산하 기구 관계자들과 만나 대북 지원을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제재로 어려울 때 비판을 감내하면서 도왔다는 사실을 분명 북한이 사후 평가한다. 북한 주민이 남측에 의존할수록, 통일은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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