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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당해도 年1445만원… 영화 스태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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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당해도 年1445만원… 영화 스태프 '눈물'

입력
2017.03.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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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편집 등 8만2,900명 종사

촬영 변수 많아 '포괄임금' 계약

초과근무 수당 제대로 못 받아

제작사 68%는 계약서도 안 써

고용부 "도급 등 계약방식 다양"

근로자 지위조차 인정 못 받아

그림 1게티이미지뱅크
그림 1게티이미지뱅크

영화미술 스태프 6년차 이모(28)씨는 오늘도 만성 허리디스크를 안고 출근한다. 영화 촬영을 앞두고 소품 디자인 작업 등 평일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토요일 10시간을 일한다. 병원 갈 틈도 없다. 매주 70시간 넘게 일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55시간 근무에 해당하는 월 220여만원(세후 기준)만 받는다. 이씨는 “촬영에 들어가면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5년 연속 한국 영화 관람객수가 1억명을 넘을 만큼 국내 영화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지만 영화 스태프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에 신음하고 있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사운드, 미술, 편집 등 영화 스태프는 8만2,912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초과 근로 수당을 받지 못한다. 올해 초 개봉해 수백만 관람객을 동원했던 모 한국영화는 주당 초과근로 시간 20시간 가량을 계산하지 않고 전 스태프들에게 임금을 지급해 영화산업노조의 중재로 총 1억원 상당을 다시 지급한 일도 있었다. 제작을 앞둔 다른 영화 역시 임금체불로 스태프가 고용청에 신고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영화 제작업은 근로기준법(제59조)에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가 서면 합의하면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 근무할 수 있는 직종에 해당한다. 날씨, 장소, 배우의 스케줄 등 촬영장에서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스태프 대부분 하루 평균 근로시간을 예상해 임금을 지급하는 ‘포괄임금 계약’을 맺는다.

문제는 포괄임금 계약에 근로시간이 실제보다 턱없이 적게 반영되고, 초과 근무를 해도 근무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씨의 계약서에는 “초과 근로에 대한 수당을 월 단위로 합계하여 추가 가산해 지급한다”고 돼 있지만 언감생심이다. 현장에서 촬영 기록을 담당하는 8년차 스크립터 박모(30)씨는 “촬영에 들어가면 잠자는 시간 3~4시간 외에는 계속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며 “준비하는 시간과 잔업 등 측정이 불가능한 시간이 길지만 정해진 금액 이상을 주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계약서조차 없이 주는 대로 임금을 받는 경우도 많다. 2015년 1월 처음으로 영화계에서 표준근로계약서 제도가 도입됐지만 지난 1년간 근로계약을 체결한 제작사는 3곳 중 1곳(32%)에 그친다. 지난 2월에는 영화산업노조가 사용자 단체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및 한국프로듀서조합과 포괄임금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이끌어 냈지만 전체 수백여개의 제작사 중 주요 43개만 참여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영화 1편당 사전ㆍ사후 제작까지 8~10개월 가량이 걸리는데도 스태프들의 연평균 수입은 1,445만원(2014년 기준)에 불과하다. 영진위가 2014년 682명의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에 따르면 제작 기간 중 스태프들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은 13.18시간, 주당 평균 근로일수는 5.45일이다. 휴가를 사용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64.9%가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영화 스태프의 애매한 지위도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다. 제작사와 감독급 스태프의 관계가 직접 고용인지 도급 관계인지 명확하지 않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성격이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의 지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자 지위는 대법원 판례에 근거하는데 현재 영화 스태프는 도급 등 계약방식이 다양해 모두 근로자의 지위는 아니다”라며 “현재까지 영화 스태프들에 대한 근로감독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넘어 촬영장의 무거운 분위기도 근로환경을 악화시킨다. 영화 미술 스태프 6년차 정모(30)씨는 “인원이 부족해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유명 감독과 팀장이 함께 일할 사람을 직접 채용하는 영화계 특성상 커리어에 불이익이 갈 수 있어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사용자 측과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시간급제를 도입하도록 하는 등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하는 단계”라며 “궁극적으로는 근로시간의 상한선을 두고 일하는 시간을 줄여나가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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