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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진화의 역사를 날아온 철새의 이동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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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진화의 역사를 날아온 철새의 이동본능

입력
2017.03.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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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아침저녁으로 소식이 궁금해지는 녀석이 생겼습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되어 치료를 받고 야생으로 돌아간 매입니다. 잘 적응했는지, 먹이는 잘 잡고 있는지 말입니다.

매는 멸종위기 1급이자 천연기념물 323-7호로 지정된 맹금류로서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체중이야 고작 1kg 남짓의 중형 조류지만 비행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 공중에서는 대적할 수 있는 조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바다나 벌판 등을 무대로 살아가는 매는 숲을 주요 근거지로 삼고 살아가는 참매와 더불어 유명한 매사냥용 조류입니다. 특히 고공에서 낙하하는 비행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촬영한 바에 따르면 시속 389㎞를 기록한 바도 있죠. 영명은 '페레그린 팔콘(peregrine falcon)', 학명은 '팔코 페레그리누스(Falco peregrinus)'입니다. 영명과 학명에서 모두 peregrin-이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이는 방랑자라는 뜻입니다. 브라질 열대 우림과 뉴질랜드 정도를 제외하고 북극해변에서부터 호주까지 분포하는 매는 이름에 걸맞게 장거리 이주에 매우 능숙합니다. 야생으로 복귀한 암컷 매에게 추적 장치를 부착한 이유는 대체 이 뛰어난 맹금류가 우리나라에서 언제, 어디를 거쳐 어디로 돌아가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방생 후 생존 모니터링과 이동경로 등의 생태연구를 위해 위치추적장치를 매에 부착하고 있다. 김영준 제공
방생 후 생존 모니터링과 이동경로 등의 생태연구를 위해 위치추적장치를 매에 부착하고 있다. 김영준 제공

이러한 연구는 멸종위기 동물의 보전에 필요한 중간기착지와 보전에 참여해야 하는 경로상의 국가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요즘 들어 큰 이슈가 되는 철새를 통한 질병의 전파 차원에서도 그 궁금증을 더욱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인류의 오랜 호기심이 그 근본이라 할 수 있죠. 왜, 언제, 어디를 거쳐 어디까지, 어떤 방법으로 이동하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 간단하게는 가락지에서부터 인공위성 추적장치와 레이더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 영상은 1992년부터 2012년까지 무브뱅크(Movebank)에 쌓인 58종 1,654개체의 전 지구적 연간 이주기록을 보여줍니다.

독수리와 같은 대형조류에게는 윙택(날개꼬리표)을 달아 이동 경로나 생존율, 수명 등을 연구할 수 있다. 수명이 40년에 가까운 조류인 만큼 그 재질에도 무척 신경을 써야 한다. 김영준 제공
독수리와 같은 대형조류에게는 윙택(날개꼬리표)을 달아 이동 경로나 생존율, 수명 등을 연구할 수 있다. 수명이 40년에 가까운 조류인 만큼 그 재질에도 무척 신경을 써야 한다. 김영준 제공

새들이 이동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연간 자원량의 변화에 순응하기 위함입니다. 이 자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먹이와 번식장소일 것입니다. 흔히 북반구에서 번식하는 조류는 봄철 북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곤충들과 새싹, 그리고 넓디넓은 번식지가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가을로 접어들면, 그 많던 곤충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다른 먹이자원도 줄어듭니다. 물론 이미 번식도 끝났기에 더 이상 추운 겨울을 북쪽에서 버틸 필요가 없죠. 이제 따뜻한 남쪽으로 가야 할 시간인 셈입니다. 다음 영상은 세계에서 가장 장거리를 비행하는 북극제비갈매기의 이동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비나 꾀꼬리와 같은 여름철새처럼 열대에 사는 녀석들이 봄철 굳이 먼 거리를 날아 북쪽으로 이주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여기에는 낮의 길이차이가 한 몫 합니다. 북반구의 여름철은 열대보다 낮이 길어 풍부한 먹이를 오랫동안 확보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손을 키워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가을이 다가오면 추워지는 날씨를 대비하여 다시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주기간 동안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 소모와 고도의 스트레스, 포식 등의 위험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주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광주기의 변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낮 길이와 기온의 변화는 새들의 신체 호르몬도 변화시킵니다. 이에 따라 깃갈이도 진행하죠.

나아가 충분한 먹이를 공급해주는 사육장 혹은 구조센터의 장애를 가진 조류들조차 야생의 같은 종족이 보이는 이동습성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봄철 사육장 안에서도 자꾸 북쪽으로 날아가려 하는 두루미가 그 예쯤 됩니다. 일부다처를 번식전략으로 선택한 조류들의 경우 보통 수컷은 암컷보다 먼저 이동하여 좋은 세력권을 형성하려고 한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야생으로 복귀한 매의 60일간의 여정. 매가 주로 평지의 송전탑을 주요 휴식처로 사용한다는 점이 놀랍다. 김영준 제공
야생으로 복귀한 매의 60일간의 여정. 매가 주로 평지의 송전탑을 주요 휴식처로 사용한다는 점이 놀랍다. 김영준 제공

그렇다면 내비게이션 시스템도 없고 나침반, 지도도 없는 조류는 어떻게 방향을 찾는 것일까요?

많은 조류는 전자장을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낮에야 태양의 위치와 머리 속에 기억된 지형지물을 인식하여 비행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볼 수도 있겠지만 먹구름이 짙은 밤하늘에는 어디에도 의지할 이정표가 없음에도 잘도 찾아간다는 점에서 자기장 인식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집을 되찾아오는 것으로 유명한 비둘기의 머리에 자기장 방해 장치를 부착하고 실험한 결과 집을 찾아오지 못했다는 실험도 유명합니다.

최근 들어 조류의 망막에 전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세포층이 존재한다는 학설까지 나오고 있어 어쩌면 조류는 자기장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자기장을 느끼는 것은 조류의 전유물만은 아니죠. 눈밭 아래에 있는 쥐를 사냥하는 여우의 경우 남북으로 정렬된 방향으로 사냥을 시도할 때는 74%의 성공률을 보였으나 동서방향에서는 고작 18% 이하의 성공률을 보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지구의 역사라는 엄청난 시간 동안 새들은 바삐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삶의 진화를 선택해왔습니다.

1만200㎞ 이상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큰뒷부리도요는 뉴질랜드와 시베리아를 오가며 한국의 서해갯벌을 중간 기착지로서 활용한다. 우리나라의 서해갯벌이 죽을 경우 이들의 미래도 보장될 수 없다. 위키미디어 캡처
1만200㎞ 이상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큰뒷부리도요는 뉴질랜드와 시베리아를 오가며 한국의 서해갯벌을 중간 기착지로서 활용한다. 우리나라의 서해갯벌이 죽을 경우 이들의 미래도 보장될 수 없다. 위키미디어 캡처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익히고 배워온 그들의 이동경로들은 기후변화와 수많은 서식지의 파괴로 인해 흐트러지고 있고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새들이 살아온 지구의 시간을 존중해주면 어떨까요?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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