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철거민 특별공급 120여가구 "철거될 집 사면 100% 입주 가능"
브로커들 웃돈 붙여 편법 거래… 강경대응 방침에도 적발 쉽지 않아
“장기전세주택(시프트), 철거민 대상 특별공급으로 신청하면 100% 입주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철거될 집을 해당 주인한테 사면 됩니다. 11월께 노원구에서 철거 공고가 나올 예정인데, 그쪽 가옥을 지금 1억 2,000만원에 사세요. 보상금은 7,000만원 정도 나올 테니 실투자금 5,000만원으로 원하는 지역의 시프트에 들어갈 수 있는 셈이죠.”(시프트 ‘딱지’ 매매 브로커)
전세난이 심화하면서 장기전세주택 입주권의 부정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도시계획사업에 따라 강제 철거될 집의 소유주에겐 특별공급 명목으로 시프트 입주권(딱지)이 나오는데, 이것이 음지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말하지만, 웃돈을 주고라도 어떻게든 시프트에 들어가려는 전세난민과 수수료를 챙기려는 브로커들(중개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암암리에 거래되는 탓에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6일 서울시와 SH공사에 따르면 최근 “’특별공급’ 자격만 있으면 원하는 곳 어디서든 시프트를 골라서 입주할 수 있다”는 식으로 철거 가옥의 불법 거래를 조장하는 온ㆍ오프라인 광고가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
시프트는 주변 전세값의 80% 이하 가격에 최장 2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주택으로 서울시에서 주거 안정을 위해 2007년부터 공급해 오고 있다. SH공사가 올해 공급할 예정인 시프트 물량은 총 1,703가구이고 이중 120여가구가 철거민 특별공급 물량으로 잡혀있다.
시프트는 주변보다 싸게, 그리고 더 오래 서울 생활을 할 수 있는 덕에 일반공급의 경우 까다로운 조건(무주택자, 청약통장 가입2년 등)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 십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반면 철거민 대상 특별공급의 자격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서울시가 도시계획사업에 따라 공원이나 주차장, 어린이집 등을 짓기 위해 특정 지역의 건물을 허물게 되면, 철거민은 특별공급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이때 철거민 자격을 인정하는 기준은 도시계획사업을 외부에 최초로 알리는 ‘주민열람 공고’ 시점 이전에 철거민 본인 이름으로 해당 건물이 등기돼 있었는지 여부다.
브로커들은 바로 이 기준을 악용, 열람공고가 나기 전 매입하면 ‘합법 거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브로커는 “1~3개월 후 공고에 날 지역이 어딘지 미리 정보를 빼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물건을 지금 사면 된다”고 주장했다. 또 현행법상 철거 예정 건물을 중개하는 행위는 불법인데 이에 대해선 “고객이 용역계약을 맺고 공인중개사를 대리인으로 지정해 그 대리인과 철거민이 거래를 하면 합법이 된다”고 편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 모든 행위가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프트 도입 취지가 주거안정인 만큼 재산증식을 위해 이런 부정거래를 한 정황이 포착되면 수사 대상이 된다”며 “또 주민열람공고 이후 실제 철거가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계획이 아예 무산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아무리 불법이 아닌 편법이라고 주장해도 브로커와 거래한 증거가 나오면 철거가옥을 산 사람은 입주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선 사법처리까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의 이런 강경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브로커가 활개를 치는 건 증거 확보가 어려워 수사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무실을 따로 차리지 않고 인터넷 블로그나 전단에 번호만 적은 뒤, 그것을 보고 연락을 하면 개별적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행위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울시 단속 인원이 부족해 브로커들을 잡는 게 어렵다”며 “철거민 자격 조건을 열람공고가 나기 1년 전으로 하는 등 강화된 대책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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