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침을 열며] 타이밍의 기술

입력
2018.05.13 18:26
31면
0 0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가 있다. 남자가 오랜 연인 썸머에게 청혼을 한다. 그런데 썸머는아직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청혼을 거절한다. 그들은 결국 헤어지고, 얼마 후 썸머는 결혼을 한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따지 듯 묻는다. “결혼 안한다고 했잖아?” 답은 간단했다. “어느 날 결혼을 하고 싶어졌어. 그때 그이가 내 곁에 있었어”.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기대했던 결과를 맺기 힘들고, 작은 일도 타이밍이 맞으면 큰 성과를 보이곤 한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중국과 인도는 부지런히 우리를 쫓아오고, 기술 격차는 수년 내로 좁혀졌다. 여기에 GM은 큰 짐을 얹었다.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배구조와 관련된 법령상 규제를 완화시켜주고 여기에 세제 지원을 포함하는 방안들도 논의되고 있으며, 나아가 혁신기술 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의 틀 자체를 바꾸는 것도 연구되고 있다. 그런데 타이밍이 좋지 않다. 기업이 국민 신뢰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갑질에서부터 밀수 의혹, 정경유착과 노조 와해 행위, 조세 탈루, 변칙상속, 외화 도피, 채용 비리, 술집 난동, 폭행 등 다양하다. “이런 분위기라면 좋은 법안을 준비해 기업을 지원하려 해도 국회 통과가 안될거에요.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아요.” 관계자의 이야기다.

국민 입장에서 실망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외부 경제환경이 아니라 회사 내부적으로 심각한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의 일탈과 전횡으로 기업가치와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았다. 검증되지 않은 재벌 3세의 문어발식 임원 겸직을 보면서 과연 그들에게 우리 밥줄을 맡겨도 괜찮은지 우려하고 있다. 사외이사도가 오너 거수기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지만 그래도 나름의 견제시스템이 없었다는 것도 놀랍다.

기업을 대변하는 입장에서는 ‘기업 때리기’가 계속돼선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로 글로벌 경제환경의 어려움과 투자 필요성을 든다. 그리고 국가는 규제를 풀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이야기다. 이러한 요구는 정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꾸준히 정책에 반영돼 왔다. 우리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애착도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해외에서 우리 기업의 로고를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 하지만 그 사이 기업은 얼마나 변했는가. 외부위협이 아니라 내부의 위협이 훨씬 더 치명적인 요즘 상황을 보면 별로 그렇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윤창출은 기업의 목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지만, 그것도 이윤창출과의 조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제는 국민 눈높이도 많이 낮아졌다. 실정법을 준수하고 사회일반의 기준에 맞는 경영을 하라는 것 정도다. 이러한 입장에 힘을 보태는 것이 금년 도입을 목표로 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지침)이다. 기관투자자가 기업들의 의사 결정에 견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기업활동에 정치논리가 개입돼서는 안 되므로 제한이 설정돼야 한다.

세계 경제가 각국이 처한 과도한 부채로 낙관적이지 않다. 현 정부 1년 평가에서도 경제가 받은 점수는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최근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경제에 안보 리스크가 줄어들면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과 정부 모두 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로 법안과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기업 입장에서도 신뢰 회복을 위해 더 없이 좋은 타이밍이다. 비록 실망했지만, 국민들이 다시 기대하고 필요로 할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기업에게는 지금이 바로 타이밍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