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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의 장녀 안수산

입력
2017.01.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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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16

안수산(1915~2015)은 누구의 딸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로 기억돼야 할 여성이다. 연합뉴스
안수산(1915~2015)은 누구의 딸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로 기억돼야 할 여성이다. 연합뉴스

안수산(安繡山ㆍSusan Ahn Cuddy)은 도산 안창호와 헬렌 리의 장녀로 1915년 1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LA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공부했고, 미 해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고, 아일랜드계 미국인 프랜시스 X 커디(1994년 작고)와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다. 2015년 6월 별세했다. 그가 계몽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신의 핏줄을 정체성의 일부로 중시했고, 조선 독립과 부흥을 염원했다는 것은 기릴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핏줄과 국적을 떠나, 우리보다 조금 앞서 동시대의 일부를 겹쳐 산 한 여성으로서도 주목해야 할 면이 충분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필드하키 야구 등 운동을 즐겼고, 야구와 소프트볼에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기량과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1940년 샌디에이고주립대를 졸업하고 42년 미 해군에 입대했다. 동양인이라 한 차례 거부당하면서도 기어이 사관후보생이 돼 최초 동양인 장교가 됐고,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후방 지원부서가 아닌 전투병과를 자원해 대공포병 장교로 활약했다. 요컨대 그는 성ㆍ인종 차별주의와의 싸움이 가장 격렬했던 자리를 스스로 선택해 주눅들지 않고 맞선 개척자였다.

그는 46년까지 만 5년을 군에 머물며 포병 교관으로, 해군정보국 암호 해독요원으로 일한 뒤 대위로 예편했다. 예편 후 국가안보국(NSA) 비밀정보 분석요원이 돼, 육아 때문에 퇴직한 59년까지 국방 등 정보분야에서 일했고, 말년에는 부서장을 맡아 300여 명의 요원을 거느리기도 했다.

가장 멋져 보인 건 그의 결혼이었다. 당시는 인종간 결혼 자체가 원칙적으로 불법이었다(미국의 ‘인종간 금혼법 Anti-Miscegenation Law’이 공식 폐지된 건 1967년이었다). 그는 47년 4월 군에서 만난 프랜시스와 워싱턴D.C의 해군 채플에서 식을 올렸다. 둘의 예식을 허락한 유일한 곳이 거기였다고 한다. 수전(수산)과 프랜시스 커디는 관습과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사랑을 선택했고, 해로했다. 그가 사랑했다는 당시의 조국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1990년 은퇴할 때까지 LA 파노라마시티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교민사회 권익과 선친의 기념사업 등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작가 존 차(John Cha)와 함께 자서전 ‘버드나무 그늘 아래 Willow Tree Shade: The Susan Ahn Cuddy Story’(2002)를 썼고, 생전과 사후 여러 영예로운 상을 받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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